2024-04-26 19:32 (금)
경남도지사님 전 상서
경남도지사님 전 상서
  • 정재상
  • 승인 2019.07.29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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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정재상

 

 존경하는 김경수 도지사님께.

 3ㆍ1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던 경남 항일 의병 최고지도자 박동의(朴東義ㆍ1867∼1908ㆍ산청) 경남 창의 대장과 의열단을 만들어 항일무장투쟁을 한 김원봉(金元鳳ㆍ1898∼1958ㆍ밀양) 단장, 지방 자체의 유일한 독립선언서인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를 만들어 3ㆍ1운동을 영ㆍ호남으로 확산시킨 박치화(朴致和ㆍ1880~1947ㆍ하동) 선생을 비롯한 서명인 12인의 숭고한 뜻이 경남도민의 마음속 깊이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도지사님께 글을 올립니다.

 저는 독립운동가들의 위국헌신이 국가로부터 온당한 평가를 받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흔적을 발굴하고, 선양하고 있는 경남 독립운동연구소장 정재상(3ㆍ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경남도 자문위원)입니다.

 그동안 저는 25년이란 시간 동안 전국을 다니며 100년 전 독립운동가와 함께해 왔습니다. 특히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영호남 출신 독립운동가 1천여 명을 발굴해 음지에서 양지를 향해 이끌었습니다. 그중에는 서두에 언급한 박동의 경남 창의 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영ㆍ호남 일대에서 의병을 규합, 일제와 맞서 싸우다 1908년 10월 일제에 체포돼 참수됐습니다.

 존경하는 김경수 도지사님. 3ㆍ1운동 100년을 맞아 경남 독립운동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하동군과 함께 전국 최초로 하동지역 독립운동가 전수조사를 하고 그 후손들의 어려움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는 윤상기 하동군수님이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민간인은 접근할 수 없는 읍ㆍ면사무소의 문서고 문을 활짝 열어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7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로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병홍 선생의 묘소를 순국 100년 만에 찾아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윤상기 군수님의 적극적이고 큰 배려가 없었다면 많은 독립운동가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 도지사님께 감히 청을 올립니다.

 앞서 언급한 하동 3ㆍ1운동 최고지도자 박치화(건국훈장)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하동 `대한독립선언서`가 발견된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생가(고가)의 보존이 시급합니다. 하동 3ㆍ1운동의 성지와 다름없는 선생의 생가가 훼손돼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100년을 위해 역사를 잊지 않고 이분들을 예우하고 뜻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 후세가 꼭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하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 독립지사의 선언서가 묻혀있었던 그곳에 그의 공훈비를 세우고, 경남도민의 손으로 생가를 보존하고 기념관을 만든다면 이는 경남지역 3ㆍ1운동의 품격을 드높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경남도민의 자긍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남해군과 전남 광양시 등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들이 최근 경남 독립운동연구소에 의해 발굴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료로 전남 광양 출신 임태일(1899∼1959ㆍ진월면) 선생 판결문과 하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정낙영, 이범호 선생 판결문ㆍ공훈록에 있습니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이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우받아야 마땅합니다. 박치화 선생의 생가 보존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의 독립운동가를 함께 예우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현재 하동 독립선언서는 지방 자체의 유일한 독립선언서로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2015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로 지정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치화의 동생 박문화(1901∼1950ㆍ대통령 표창) 선생도 1919년 4월 7일 하동 공립 보통 학교 학우 130여 명과 함께 하동 읍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태형 90도를 받았습니다.

 또 박치화의 아들 박성무(1913∼?) 선생도 1933년 전북 정읍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체포돼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 형을 받고 고초를 겪었습니다. 박치화, 박문화, 박성무 3인이 태어나고 성장한 선생의 고가를 잘 보존하고 성지화해 경남인의 긍지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경수 도지사님.

 독립운동가들이 흘렸을 한없고 뜨거운 눈물을 이제는 따뜻한 관심으로 보살펴 주십시오. 도지사님의 혜량 있으시길 앙망합니다. 도지사님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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