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24 (토)
책 읽기와 글쓰기로 피서나기
책 읽기와 글쓰기로 피서나기
  • 소설가 이광수
  • 승인 2019.07.22 1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하의 계절 7월이다. 일상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휴가 떠나는 차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로 해외로 바캉스를 떠나는 것이 이젠 일상화됐다. 그만큼 삶에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다. 그러나 은퇴기가 되면 남성들은 나들이가 시들해진다. 그러나 여성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증가로 남성과는 반대로 나들이를 좋아한다. 나 역시 피곤한 나들이보다 방콕하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긴다. 물론 평소 가고 싶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인파로 북적대는 피서지의 소란이 싫어 휴가철이 지난 후 호젓한 바닷가를 찾는다. 날씨 더운데 뭔 방콕 타령이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사람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심신을 피곤하게 한다. 대신 평소 사고 싶었던 신간목록을 들고 서점을 찾는다.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책을 잔뜩 사서 쌓아 놓고 한 권씩 독파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녹아 있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취미요 장기가 되어 버린 나는 책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요즘 특별한 목적을 두고 계속 탐구해온 주역 공부의 난해함에 싫증이 나자 고전 읽기로 정신 줄을 다잡고 있다. 세계 명작들은 초중고 시절에 거의 다 독파했다. 최근엔 중국과 한국의 고전을 원문과 함께 번역한 책과 미래예측서 등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펴낸 책들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읽은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해체해 해석한 글을 써서 확실하게 내 것으로 소화한다. 주역 관련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동양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안목을 갖게 됐다. 비록 우리가 서양의 선진문물을 도입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피폐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고 삶의 행태도 급변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때문인지 정신적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가운데 상식 밖의 끔찍한 사건ㆍ사고가 빈발한다. 인문학적 소양 교육의 부족으로 물질만능주의에 경도된 현대인은 지극히 계산적인 이기심의 충동에 현혹되기 쉽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활자로 된 매체인 책과 신문, 잡지는 독자의 외면으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다양한 정보 매체들이 쏟아내는 진위가 불분명한 각종 정보가 팩트(fact)인 양 활개를 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SNS(사회관계망)에 넘쳐나는 카더라 식 가짜뉴스와 댓글 달기는 혐오성 비난과 험담으로 도배가 된다. 특정 이슈가 뉴스로 뜨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비난 댓글부터 쏟아낸다. 그것도 객관적 시각이 아닌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경도된 비난성 댓글이 홍수를 이룬다. 나도 칼럼을 쓰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적인 글이 많지만, 그 비판의 이론적 근거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7백 쪽에 달하는 옛사람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느낀 게 많았다. 동양고전 번역서는 500~1천2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많다. 특히 한자로 된 원문을 현토 번역 해석한 고전들은 우선 책 부피부터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차분히 느긋하게 읽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빨리 독파할 수 있다. 고전 읽기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행간의 의미를 음미해 가면서 읽어야 독파가 가능하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듯이 조급증을 내면 금세 싫증을 느껴 중도에 책장을 덮고 만다.

 독서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 사시사철, 평생을 두고 지속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과업이다. 새롭게 쏟아지는 각종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지 않으면 생존경쟁에서 낙오되기 마련이다. 한여름이 지난 선선한 가을이 돼야 책을 가까이한다는 인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e-북이나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지식 정보를 습득하는 것과 종이책의 책장을 넘기는 독서는 그 느낌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요즘 한창 뜨는 뉴트로 현상은 새로움과 복고의 융합으로 디지털적 생활방식과 아날로그적 사고의 균형 잡기를 의미한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 독서와 기록의 리튜얼(ritual)은 시대적 트렌드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정신적으로 공허해지기 쉬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준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백학사의 초가집을 지나며 짓다>에서 유래한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 五車書)`는 `사내대장부라면 모름지기 평생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거서 즉, 만권 분량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499권의 책을 써서 남겼다. 그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는가. 만 권은커녕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35%라는 한국의 독서통계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세계 12위 경제 강국 한국의 국력과는 거리가 먼 열악한 국민독서 수준의 민낯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의 피서 나기는 실천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하고 고상한 지적 경험이다. 하릴없이 공원이나 어슬렁거리며 낭비하는 삶은 밀란 쿤데라가 말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