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8:46 (금)
“日 대표 아닌 한 사람의 아내와 엄마로 평범한 삶 꿈꿔요”
“日 대표 아닌 한 사람의 아내와 엄마로 평범한 삶 꿈꿔요”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6.17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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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이주 외국인의 삶 <일본인 오오시마 키요미>
오오시마 키오미는 1995년 한국에 시집 와 폭넓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오오시마 키요미는 1995년 한국에 시집 와 폭넓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국제결혼 꿈 꿔 이뤄
참가정실천운동본부 총무 활동
외국인 최초 지역 통장 뽑혀 ‘화제’
회현15통장으로 바쁜 나날 보내
23년 한국생활 한ㆍ일 관계 질문 곤란

 2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3명의 남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오오시마 키요미.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오사카의 한 세계평화통일 가정연합회 소속 한국인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통일교가 내세우는 ‘인류세계는 예수님을 중심 삼고 하나의 대가족 사회가 될 것을 믿는다’는 교리가 자신의 생각과 부합하다고 믿었고 신앙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현재 키요미는 그때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무리 중 한 명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섬나라, 일본에 살고 있었던 키요미는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 그를 만나기 위해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 소개시켜줬다 한 들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타국까지 건너 와 소개팅을 할 용기가 났는지 키요미에게 물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전쟁, 분쟁, 살인, 죽음 등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잖아요.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인 문제로 우호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 한켠에 늘 자리 잡고 있었어요. 마음이 좋지 않았죠. 크게는 세계평화를 바랐고 작게는 나 스스로 봉사활동을 통해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었어요. 국제결혼은 작은 섬나라에 살고 있는 제게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나중에 태어나게 될 2세도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남편과 지난 1995년 결혼을 한 키요미는 그 후 23년 간 쭉 한국에 살고 있다.

 △처음 한국생활이 힘들 진 않았는지?

 “오사카에서는 운전 중 속도를 줄이면 마치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처럼 뒤차의 경적 소리를 듣게 될 거에요. 오사카 사람들은 성격이 매우 급하죠. 오사카 사람들과 부산과 김해를 포함한 경남 사람들이 비슷한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웃음) 성향이 비슷해서 빠르게 적응한거 같아요. 23년간 한국에 살면서 어려운 일 하나 크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의식주 모든 것이 잘 맞아요. 특히 우리 남편처럼 좋은 분을 만난 게 너무 행운이었고 아직까지도 너무 행복해요. 임신이 늦게 돼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거 말고는 모든 게 완벽했어요.”

 키요미에게는 자식이 하나 있다. 그녀의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생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늦둥이, 10살 난 어린 딸이 있다. 결혼 후 키요미는 오랫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개인적인 시간이 많았다. 그때부터 가까운 경로당 청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봉사활동이라고는 하지만 뭔가를 내세울 만큼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요. 어르신들 말동무가 돼 드리는 거죠. 한국에서 경로당 봉사를 다니며 한국으로 시집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한국이나 동남아 또는 서구권에서 일본으로 시집을 왔을 때, 일본으로 시집와줘서 고맙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일본인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봤어요. 그저 개인적인 사정으로 왔다고 생각하지 고맙다고 생각해줄 사람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매번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럴 때 마다 큰 감동을 받아요.” 현재 키요미는 김해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참가정실천운동본부 총무와 회현동 15통장으로 활동 중이다. 외국인이 통장으로 활동했던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키요미의 통장 역임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장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통장은 행정 구역의 단위인 통(統)을 대표해 일을 맡아 보는 사람으로 관할 통 주민의 지도, 행정시책의 홍보와 주민의 여론, 건의사항의 보고, 주민의 거주, 이동상황 파악, 종 시설 확인, 새마을사업 추진협조 지원, 통ㆍ반원의 비상연락 훈련, 전시홍보와 주민계도(전시에 한함), 전시전략의 동원과 전시 생필품 배급(전시에 한함), 법령으로 부여된 임무와 그 밖에 동 행정에 필요한 사항 등의 행정적인 보조역할과 연락 및 전달을 주 업무로 하고 있어요. 요즘은 슬로시티와 물 순환도시 김해 관련 세미나 참가로 바쁘게 지냈어요.”

 △통장이 되게 된 계기?

 “전 회현15통장님이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그 뒤를 이을 통장을 급하게 선출했어요. 주변에서 지원을 해보라고 부추기시더라고요. 전 통장님께 인수인계도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라 정말 처음부터 개척하다시피 바쁘게 지냈어요. 처음에는 임기 2년이 끝나기만을 바랐어요.”

 △임기가 끝나고도 재위임을 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회현동은 연립주택이 많아요. 같은 주소에 5~6가구가 거주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에 누가 살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집집마다 방문해서 확인해야 했어요. 이제 대충 누가 어디 사는지 알았는데 지금 그만 두기엔 아쉽더라고요. 또 많은 분들이 감사함을 표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그만두기가 쉽지 않았어요.”

 키요미는 해마다 2번 씩 담은 김장김치를 자전거에 싣고 집집마다 방문해 전달해오고 있다. 독거노인과 수급자들이 많은 회현 15통 통장, 키요미는 다른 구역보다 2배로 많은 김장김치를 전달한다. 전화 한 통으로 찾으러 오라고 말해도 될 것을…. 그들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던 모양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마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나는 주부로서, 엄마로서, 불합격일 것 같아요. 참가정실천운동본부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내 가정을 희생하며 남을 돕는 다는 게 우리 남편과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는 우리 남편의 아내로, 우리 딸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한국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결혼 후 열심히 저축해 몇 년 뒤에 차 사고, 또 몇 년 뒤에는 집 사고 하던데…. 매우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점 보다는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딸이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살면서 난감하거나 곤란한 일을 겪은 적이 있나?

 “한국인들이 제가 일본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어요. 독도가 누구의 땅이냐고 물어봐요. 그럴 때마다 제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해가며 대답하죠. 회현 15통의 통장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들이에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에 살면서 일본인으로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받았죠. 그때 저는 ‘내가 해결할 것은 없다. 나는 통장으로서 문제를 제기 받으면 그 부분을 담당자에게 잘 전달할 뿐이다. 당장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라 대 나라의 대표로 역할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고 대답했죠.”

 한일간의 주요 현안 사항인 독도를 둘러싼 문제, 위안부 문제, 징용공 재판 문제, 일본산 수산물 등의 수입규제, 동해 호칭 문제, 불상 도난 사건 등 우리는 아직 일본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23년간 한국에 거주하며 크게 어려운 점 없이 살아오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문제를 들이밀며 공격적으로 다가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혹시 그녀가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한일관계는 역사를 인식하는 바탕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일본인이지만 일본인 대표로 자신을 바라보기보다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키요미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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