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8:53 (금)
인권 수혜자 밖에 세우고 이권 다툼 벌이는 꼴
인권 수혜자 밖에 세우고 이권 다툼 벌이는 꼴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5.16 2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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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의 서향만리
류한열의 서향만리

인권의 주체는 잠을 자고 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건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자괴심은 누가 보상하나.

 인권은 말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인간의 역사를 따져보면, 역사를 인권 획득을 위한 투쟁이라 빗대도 나무랄 사람이 별로 없다. 인권으로 고귀하게 치장한 사람과 인권의 냄새조차 맡지 못한 사람이 맞붙어 무게 추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은 역사의 핵심이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나’라는 외침은 고려 시대 신분을 없애자고 일으킨 노비 만적의 난 때 울려 퍼졌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종속돼 살면 인권은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남들한테서 휘둘릴 수 없는 인권을 가진다. 학교에서 열심히 배웠던 천부 인권이다. 천부 인권을 선언하면서 역사의 변곡점을 맞은 경우는 세계사의 여러 페이지에 나온다.

 학생인권조례가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부결됐다. 도의회 교육위원회 재적 위원 9명 중 찬성 3명, 반대 6명으로 상임위 문턱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두고 찬반 측은 양보 없는 전쟁을 치렀다. 찬성하는 단체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민주시민 역량강화를 위한 첫걸음일 뿐 아니라 학생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정의의 촛불을 밝혀왔다. 반대하는 단체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가 되레 교사의 교육과 훈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나쁜 친구’라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내에서 차별금지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양측은 상대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웠다.

 인권을 조례나 법으로 명문화해야 효과가 나는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 인권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학생을 인격체로 보는 시각보다 피교육생이라는 이름을 달아 벌판에 던져놓았다. 많은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 밖 학생으로 전락했고 학교의 역할에 의문을 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학교가 인권이 숨 쉬는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가. 박종훈 경남도육감이 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이 부결된 데 유감을 밝히면서 “학생인권조례는 민주교육의 장인 학교를 인권이 숨 쉬는 공간으로 가꾸기 위한 교육적 사명감의 발로”라고 했다. 박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도의회 본회의에 상정해 반드시 통과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강하게 피력했다.

 역사가 말하듯 인권을 세우는 일에 숱한 목숨을 대가로 내놓아야 했다. 거친 역사에서 인권은 숭고한 이념이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에 강하게 새겨져 있다. 자신의 인권을 갈망한 주체는 강한 바람을 표출했다. 인권이 단단한 비석처럼 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석보다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 인권의 주체인 학생들의 바람이 그만큼 강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인권의 주체는 가운데 앉아 있고 양쪽에서 찬반으로 편을 나눠 목청을 돋우는 모양새다.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학생들의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슷한데 접근은 판이하다. 신성한 땅에 놓인 인권이 혼탁한 땅에서 원래의 의미를 잃고 뒹구는 모양새라 해도 토를 달기 힘들다.

 학생인권조례가 상임위에서 부결되던 날 학교에서 일어난 실화. 창원 여고 교실에서 한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걸 본 선생님이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며 “학생 일어나세요”라고 했단다. 선생님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자는 걸 그대로 두기가 민망했을 터. 선생님은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오늘 아침에도 했다. 거의 신체적 접촉을 피해 손가락을 바람 같은 스침으로 학생을 깨웠다. 잠을 깬 학생의 한마디는 선생님의 정신을 강타했단다.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시죠.” 이 선생님이 집에서 남편에게 한 한마디 “학생이 천사가 아니고 원수야 원수.”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라고 타박하지 마시라. 인권은 싸움을 해서라도 쟁취해야할 소중한 덕목이지만 인권의 주체는 잠을 자고 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건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자괴심은 누가 보상하나.

 학생 인권이 새삼스러울 수 없는데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지금까지 학생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것처럼 비친다. 학생들이 인권의 주체로 서지 못한 것은 교육의 공급자인 선생과 교육 당국의 잘못이 크다. 학생의 인권이 더 나아지면 교권이 무너진다는 이분법적 상황이 전개되는 현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해 일단 멈춰섰다. 인권의 물줄기를 곧게 세울 때 흘렸던 땀과 피를 되새기며 본회의까지 더 숙고하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인권 수혜자는 밖에 있고 이권 다툼을 벌이며 인상을 쓴 양측이 링에서 싸우는 형국은 아름답지 못하고 추해 보인다. 어리석다해도 인권이 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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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9-05-22 13:30:55
그렇습니다. 주체는 잠자고 있는데 그들은 조례만 제정이 되면 학생들이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인권이 보장될 거라고 말합니다. 정작 그 주체들의 인격은 시궁창인데도 말입니다. 교권을 추락시킨 전교조의 비뚤어진 교육이 지대한 효과를 발휘하는데 전가의 보도 역할을 톡톡히 할 겁니다. 우짜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