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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험 징후 무시 땐, 시민은 참사당한다
국가 위험 징후 무시 땐, 시민은 참사당한다
  • 경남매일
  • 승인 2019.04.1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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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규 경남안실련 사무총장
이진규 경남안실련 사무총장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5명이 죽고 13명이 다쳤다. 화마가 아닌 살인마에 의해서다.

 살해의 동기가 임금체불이 원인이라느니, 층간소음이 원인이라느니 하면서 이번 사건의 발생 원인을 그런 것들에서 찾기에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실제적 범행 동기를 놔두고서 사건의 촉발 요인으로 작용한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동기와 이유를 알기 어려운 범행에 깔려 있는 범인의 심리상태와 의미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범죄자가 가지고 있는 공격성과 분노 등의 개인적인 성향은 화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폭발할 준비가 돼 있고, 언제든지 여차하면 터트린다는 것이다. 채무 문제, 가족 관계, 이성 문제 등 사회적 스트레스는 붙을 붙이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것들이 뇌관처럼 작용하게 되고 어떤 촉발 요인으로 인해서 불이 붙으면서 폭발하게 된다. 촉발요인은 다양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본다는 것이 기분 나빠서 살인의 촉발 요인이 될 수도 있고, 범인의 말처럼 임금체불이나 층간소음이 촉발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촉발요인을 마치 이번 살인사건의 주요 동기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건을 차분하고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범인이 정신적 문제로 진찰을 받았다는 것과 이웃 주민과의 갈등에만 초점을 둬서는 곤란하다. 또 층간소음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범행의 직접적 원인으로 몰아가서도 곤란하다. 바로 위층에 사는 주민을 촉발요인으로 삼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체불이 살인의 동기가 됐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처럼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는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방해만 될 뿐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 노인, 어린이였다. 범인이 건장한 남자에게는 흉기를 들이대기는커녕 계단을 그냥 내려가는 것을 보기만 하고, 저항능력이 없어 보이는 약한 사람만 골라서 칼로 찔렀다. 70대 노인 1명, 60대 여성 1명, 50대 여성 1명, 18살 여고생, 그리고 이제 12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녀를 무참히 살해했다.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범인이 항거하지 못할 것 같은 약자만을 대상으로 범행했다는 것은 이성을 잃어서도, 정신착란도 아니다. 그저 비겁함의 끝을 보인 잔인한 살인마일 뿐이다.

 강력범죄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치 힘세고 강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하고 열등감이 많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대상으로 이런 범행을 저지른다.

 비겁한 범인이 복수나 범행을 하고자 마음먹었던 대상은 그들보다 강한 상대가 대부분이다. 강자나 권력, 사회시스템에 대해 복수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강자라고 생각되는 그들에게는 다가서지 못한다.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만 불만을 유발시킨 권력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복수할 방법도 복수할 용기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비겁하고 병적인 범죄의 징후는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징후만 가지고 격리와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격리와 처벌이 아니더라도 신고와 접수를 받아서 상담을 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오랫동안 가해자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할 동사무소와 관리사무소에 민원제기를 했지만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주민들의 수차례 신고에도 국가기관이 위험 징후를 무시하면서 결국 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참사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이상 행동자에 대해 신고와 접수, 상담과 관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역정신건강센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원인을 분석해서 처리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하루 빨리 갖춰져야만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을 위한 안전대책은 위험징후를 가벼이 여기지 않은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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