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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붕괴에 대한 경고
민주주의 붕괴에 대한 경고
  • 이광수
  • 승인 2019.03.17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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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최근 읽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어크로스)`에서 공동 저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엘 지블랫 교수는 "극단주의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저자는 그 징조를 미국과 세계도처에서 발흥하고 있는 극단주의 권력자들의 예측불허 행동에서 적시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이태리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브라질의 바르가스,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같은 아웃사이드 정치인들이 내부로부터 선거나 강력한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권좌에 앉았다. 기존의 엘리트 집단이 대중적 인기가 높은 극단주의자를 받아들인 치명적인 실수로, 잠재적 독재자에게 권력의 열쇠를 쥐여 줌으로써 파멸의 길로 빠져든 것이다. 이는 정당이라는 권력 통제의 문지기들이 잠재적 독재자를 가려내야 할 책임을 방기한 결과이다. 극단주의자들은 우매한 민중을 조종하는 프로파간다의 고수들이다. 이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들은 극단주의자들이 민주주의 파괴자가 된 후에야, 제 발등을 찍은 어리석음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순진한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극단주의자들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해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치명적인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화를 자초한 것이다.

 한편, 선거에 의해 선출된 극단주의적 포풀리스트에 의해서도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파괴됐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른 지금 러시아, 터키, 베네수엘라, 폴란드, 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독재 권력의 장기 철권통치하에 놓여 있다. 중국과 북한의 일당독재 권력은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정치집단으로 본다. 미국의 주력 언론계와 지성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극단적 포풀리스트의 등장으로 보고, 미국판 전제주의 출현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예측불허 극단주의자의 등장으로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불복종을 선언하며 법원과 안보기구, 윤리위원회 등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자들이 선거승리를 위해 법률을 고치고(선거구 게리맨더링), 헌법을 수정하고, 심지어 선거권까지 박탈(미국 이민자, 소수민족의 선거권 제한: 직업증명서 미소지자 투표권 행사 제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고 한 미국은 이제 `전제주의의 실험실`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두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직 경험이 전혀 없고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존중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독단적 성향이 뚜렷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미국의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N.Y.T, W.P, LA 타임스 등 미국의 주력언론에 대해 트위터로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폭스뉴스만 상대한다. 그는 멕시코를 통해 입국하려는 남미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멕시코국경장벽설치예산을 요구했으나,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거부하자 연방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는 셧다운(shut down)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지금 우리는 지난 시절 우리가 겪었던 독재 권력과 독단적 전제정치와의 치열한 투쟁과정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 눈에 보이는 민주주의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제주의가 혼재된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민주주의가 조종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여러 나라(유럽, 남미, 미국, 일본 등)는 극우 포풀리즘을 앞세운 정치세력의 선거승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반 이민 정서와 신민족주의를 앞세운 극우 포풀리즘의 발흥은 불평등의 심화와 정치적 무능, 희망을 잃은 유권자, 특히 청년 세대의 분노와 절망에 기인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인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진보ㆍ보수 양 진영의 극한 대립은 양극화의 산물인 포플리즘 정치의 출현을 부추기고 있어 우려된다.

 두 저자의 민주주의의 죽음에 대한 준엄한 경고메시지는 남미 등 세계 여러 나라와 미국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경고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민주적 의지로 충만한 지도자 혼자서 지킬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권력을 처음 쥐었을 때 민주적이었던 자가 그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독재자로 변절하는 것을 우리의 지난 정치사와 세계정치사에서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성 김형석 교수는 최근 기고한 글에서 `국민의 민주역량이 정부의 이념정치보다 앞서 있다`고 했다. 이는 정치가 국민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함량 미달 정치행태에 대해 침묵하고 좌고우면하는 지성 또한 폴리페서나 사이비 지성으로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결국 불행했던 지난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시니컬한 방관보다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극단주의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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