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 품고 오백나한 모신 최고의 기도 도량
오랜 역사 품고 오백나한 모신 최고의 기도 도량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3.05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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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선지사를 가다 원 천 스 님(주지)
1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안거 수행을 이어온 원천 스님은 우리 시대 구도자의 표상이 되고 있다.
1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안거 수행을 이어온 원천 스님은 우리 시대 구도자의 표상이 되고 있다.

 김해 선지사 가는 길에 봄기운이 흐른다. 매화가 내민 함초롬한 얼굴은 아직 남은 찬바람을 힘겨워 하는 듯 흔들림이 애처롭다. 봄꽃의 향기에는 겨울을 순적하게 이겨낸 승리의 음성이 묻어난다. 사람들도 겨울을 이겨내야 봄날에 쏟아지는 햇살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선지사 가는 짧은 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2000~01년 절터서 와편ㆍ와당 발굴
통일신라~조선중엽 역사 학술적 고증
지역 선(仙)지역 7곳 선문화 중심 입증
원천 주지스님 16년 동안 안거 수행
"예수보살상 모신 건 종교화합 바랐죠"
김해시불교연합회 회장직 작년 맡아
흩어진 스님ㆍ불자 마음 묶는데 전력

 김해시 주촌면 선지리 501번지에 내려앉은 선지사를 보면 한눈에 명당을 안고 가부좌를 튼 형상인 것을 알 수 있다. 속세에서 벗어나 몇 걸음에 닿는 선지사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도 도량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선지사가 품고 있는 역사의 깊이와 기도의 넓이는 경남을 덮고도 남는다. 김해지역에서 평지에 자리 잡은 큰 사찰은 선지사뿐이다. 선지사는 대한 조계종 통도사 말사로 약 15년 전만해도 덕천사라 불렸는데 절터에서 선지사라 쓰인 기와가 발견되면서 선지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원천 스님이 2000~2001년 절터 발굴 때 나온 와당 등을 가르키며 선지사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원천 스님이 2000~2001년 절터 발굴 때 나온 와당 등을 가리키며 선지사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선지사 주지는 원천(元泉) 스님이다. 원천 스님은 지난 1986년부터 선지사에서 수행자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1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안거에 들어가고 1년에 하안거과 동안거를 100일씩 정진한 수행자는 드물다. 원천 스님은 험난한 수행자의 길을 꼿꼿하게 걸어간다. 그래서 일까. 원천 스님의 미소는 꾸밈없이 참 해맑다.

 "선지사가 김해에 자리를 잡은 후 칠선(七仙)이 생겼어요. 선(仙) 자를 딴 지명인 동선ㆍ서선ㆍ내선ㆍ선문당ㆍ선지못ㆍ선지고개가 있어요. 김해가 으뜸 불도(佛都)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원천 스님은 선지사의 역사를 통일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 중엽까지 잡고 있다. 지난 2000~2001년에 법당과 요사채를 짓다 유물이 나와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 발굴을 의뢰했다. 발굴 때 `선지사(仙地寺)`가 새겨진 명문기와와 와편 등 100여 점이 나왔다. 선지사의 역사는 학술적 고증이 뒷받침한다. 이영식 인제대 교수는 와당을 보고 "선지사는 경주 황룡사지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고 말했다.

 원천 스님은 주촌은 법력이 일어날 최고의 자리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 명당 터 3곳 중 한 곳이 김해 주촌이에요. 주촌을 둘러보면 산소가 곳곳에 있고 봉우리가 절로 기울어 있는 형상이지요. 지난 1994년 12월 25일 선지사 뒷산 3곳에서 100일간 서광이 비쳤어요." 예전에 주촌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선문당이 있었다. 선지고개는 없어졌지만 주촌 전체가 선지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수로왕 시대에 선도문화가 있었어요. 신선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김수로왕은 어릴 때 선을 닦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이지요.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가야로 시집올 수 있었던 건 종교와 문화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에서 나온 10명 왕자 가운데 7명 왕자가 스님이 됐어요. 지리산에 칠불암에서 성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요." 원천 스님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선지사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선지사에 찾아온 봄은 구도자에게 생명의 윤회를 일깨워 준다.
선지사에 찾아온 봄은 구도자에게 생명의 윤회를 일깨워 준다.

 선지사 영산전에는 오백나한상이 앉아 있다. 오백나한상에 예수 보살상이 끼여 있어 절을 찾는 사람이 이유를 알려고 할 때가 잦다. "종교 간 화합과 소통을 바라는 마음에서 예수 보살상을 모셨어요. 21세기는 다종교 시대잖아요. 중국 곤명 공죽사에서도 1250년 전에 예수 보살을 모셨다는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모셨는데 처음에는 반대 소리를 들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취지를 이해하지요."


 나한기도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선지사에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기도 도량으로 최고로 여겨진다. 선지사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여의도 정치가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선지사의 기도의 영험 때문이라고 말하는 지역 주민이 많다.

 "기도를 할 때는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해요. 신ㆍ구ㆍ의(身ㆍ口ㆍ業)의 업(業)과 전생의 업을 소멸해야 기도가 성취되지요. 불보살은 무한한 공덕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불보살에서 가피를 입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고,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할 수 있지요."

 원천 스님은 지난해 11월 제12대 김해시불교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원천 스님은 "지역 불교계의 화합과 발전을 최우선으로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불교계는 지난 1년 동안 회장이 3번 바뀔 정도로 깊은 내홍을 겪었다. 지역 스님의 화합과 안정을 위해 과감히 회장 직을 맡은 원천 스님은 수행자로서 바른 리더십을 발휘해 흩어진 스님과 불자들의 마음을 모을 것으로 지역 불교계가 기대를 하고 있다.

 원천 스님은 1967년 통도사 운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0년 출가 수행자로 수행과 전법에 매진해 왔다. 원천 스님은 30년 동안 선지사 불사를 하는 중에도 선원에서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원천 스님은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3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86년부터 김해 선지사 주지로 부임해 영산전을 비롯해 약사전 산신각 등을 불사했다.

선지사는 선학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도량으로 마을에서 1.2㎞ 떨어져 있다.
선지사는 선학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도량으로 마을에서 1.2㎞ 떨어져 있다.

원천 스님은 해인사 학인시절 성철 큰스님에게 3천배를 올렸다. 성철 스님은 "내 곁에 있어도 좋다"며 원천 스님을 인가했다. 원천 스님은 통도사 차기 방장으로 유력하다.

 원천 스님은 주지와 수행납자의 삶을 견실하게 살고 있다. 원천 스님은 선원에서 불도에 정진하고 선지사의 불사에 매진하는 삶의 두 기둥을 잘 떠받치고 있다.

 세납 70을 바라보며 구도자의 삶을 사는 원천 스님(법랍 50)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눈에 그윽한 자비의 빛이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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