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41 (토)
구마몬의 비밀
구마몬의 비밀
  • 이광수
  • 승인 2019.02.14 2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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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구마몬`은 일본 큐슈의 구마모토(熊本)현에서 곰(熊)을 뜻하는 구마와 사람을 뜻하는 몬을 합쳐서 만든 마스코트 이름이다. 구마몬 마스코트로 유명세를 탄 구마모토현은 일본 내 43개 현의 하나로 일본 남단에 위치한 인구 170만의 광역지자체이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1도(都) 1도(道) 2부(府) 43개 현(縣) 등 47개의 광역자치단체와 1천727개의 기초자치단체인 시(市) 정(町) 촌(村)으로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아 인구감소에 따른 생산인력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다. 농ㆍ산간, 어촌뿐만 아니라 도쿄 같은 대도시 인구마저 감소해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일본 정부는 기초자치단체인 시 정 촌을 통폐합해 권역별 중추 도시권으로 행정구역개편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구마모토현은 지난 2010년 큐슈 신칸션 고속철도 연장개통의 호기를 맞아 현 알리기 사업으로 `구마몬` 마스코트 프로젝트를 창안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듬해인 2011년 전국 마스코트 경진대회에서 350개 참여 캐릭터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해 기염을 토했다.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단계 구마몬 프로젝트를 가동해 사업 확장을 꾀했다. 어렵게 키워온 구마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첫째, 구마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둘째, 구마몬과 구마모토의 관련성을 강화한다. 셋째,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세 가지 콘셉트를 정했다. 이 방침을 적용해 기업 등 구마몬 캐릭터 상호 사용을 제안할 경우 사용허가 여부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구마몬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인 지역발전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장기적인 포석이었다. 이렇게 출범한 구마몬 프로젝트는 일본 내는 물론 외국까지 유명세를 타게 됐으며, 구마몬 캐릭터 덕분에 연간 1조 2천억 원대의 생산유발 효과를 거두게 됐다. 일본 행정시책 베끼기 최 첨병인 한국도 각 지자체별로 구마몬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한때 상징 캐릭터 제작 붐이 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행정시책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작은 장대한데 지속성이 없어 어렵게 짜낸 아이디어도 잠시 반짝했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실질적인 지역 홍보 발전을 위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되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한 채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다.

 경남의 30년 숙원 사업인 남부내륙철도사업이 확정됐다. 구마모토현이 큐슈 신칸션 철도연장개통의 호기를 살려 구마몬이란 프로젝트로 성공했듯이, 철도가 통과하거나 종착지가 될 지자체들이 어떤 대응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거저 주는 떡이나 받아먹고 서울유람이나 편히 하겠다는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다. `구마몬`은 인형임에도 영업부장(우리나라 국장급)이라는 직함으로 인근 시는 물론 전국 지자체에 구마몬 브랜드로 상품을 팔아 지방재정 수입 증대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개 시골 현의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해 테스크 포스를 구성하고, 무모할 것 같은 일을 벌여 전국은 물론 세계를 누비며 구마몬 홍보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공무원 소관이 아니라고 전문가(용역)들에게 맡기는 한국의 행정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도 한국처럼 정치판은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세 차례나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국민의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바에 의하면 거의 절대적이었다. 일본이 실질적인 세계 2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이런 공직자들의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공복 마인드와 국민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구마모토현 구마몬 프로젝트팀의 전략은 엉뚱하리만큼 색달랐다. 초기에는 관청 냄새가 나지 않게 구마몬 인형을 전국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장과 경기장(특히 야구장) 광고 부스에 게릴라식으로 입점시켜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SNS와 친근한 젊은 세대에게 어필돼 포털사이트와 휴대폰에 업로드되는 단골 소재가 됐으며, 그 후 본격적으로 구마몬이 구마모토의 상징 캐릭터임을 PR해 빛을 보게 됐다. 이제 구마몬은 구마모토현을 대표하는 상징 캐릭터로서 어엿한 비즈니스맨이 돼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마몬 캐릭터 사용도 허가권은 현청이 가지되 상표권 사용료는 무료로 해서 사용자의 부담을 덜어줬다. 따라서 우리도 구마모토현의 성공사례를 본받아 캐릭터 제작만 해놓고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의 대표 브랜드로 적극 육성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진화된 AI 기술을 입혀 요식업소나 기관단체 안내 데스크부터 지역상징 마스코트를 배치하면 손쉽게 브랜드 홍보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면종복배와 무사안일의 타성에 빠진 공무원이 아니라,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충만한 구마모토현의 공직자들처럼 우리 공직사회도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아직 `구마몬의 비밀`이 뭔지도 모르는 지방공직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평범한 월급쟁이로 자리만 지키는 구신(具臣: 있으나 마나 한 신하)과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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