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58 (토)
마지막까지 ‘일본에 대한 분노’
마지막까지 ‘일본에 대한 분노’
  • 김용락 기자
  • 승인 2019.01.2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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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93세 별세 ‘나비기금’ 설립 피해자 도와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복동 할머니가 29일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다는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할머니께서 많은 말을 하셨는데 기력이 없으셔서 알아듣기 힘들었다”면서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한마디였다”고 말했다.

 1926년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4살이던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다. 이후 8년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 끌려다니며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여성인권운동의 길을 걸었다.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와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 등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을 이어갔다.

 김 할머니는 2012년 3월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이어 2016년까지 유엔인권이사회와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전시 성폭력 반대운동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대표해서 활동했다.

 이후에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항상 모습을 드러내는 등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투쟁에 앞장섰다.

 정의연은 “김 할머니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징이었다”며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온 인권 평화 활동가였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암 투병 중에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1인 시위를 해왔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열리며, 29일 오전 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에 빈소가 마련됐다.

 한편, 28일 오전 7시 30분께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A 할머니(94)가 별세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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