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03 (금)
아이들은 출근 중
아이들은 출근 중
  • 이영조
  • 승인 2019.01.2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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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정년을 마치고 퇴직한 지 6년이 지났다. 하지만 출근을 계속한다.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심리상담센터를 개원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사람은 특히 남자들은 소속된 집단,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삶의 보람, 의미를 더 강하게 느끼는가 보다. 그것도 전문성이 갖춰져 즐기듯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의 의미는 배가 된다.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출근을 서두르는 여러 이웃을 만나게 되는 만남의 장소다. 이들은 출근해야만 볼 수 있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래층에 사는 한 분이 외투를 손에든 채 급하게 올라타 인사말을 건네고 거울을 보며 머리 손질과 옷매무새를 고친다. 미소로 화답하고 조금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 작동 버튼을 누르고 서 있다. 집을 향해 "엄마 빨리 나와!"를 안타깝게 외치면서 안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준비가 덜 된 엄마가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놓으라고 시킨 모양이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삶을 위한 투쟁, 전쟁터로 향하는 전사들의 모습과 같지만 내 모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모습, 그리고 정겹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는 "죄송합니다." 미안해했지만 한편, 엘리베이터에 승차한 것에 안도했다. 이번에는 2~3세 된 아이를 안은 할아버지가 올랐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칭얼대는 아이는 할아버지 어깨를 바짝 끌어안고 떼를 썼다. 출근하기 싫다고, 마치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잠을 더 자고 싶다는 절규처럼 들렸다.

 우리 집 1층에는 동그라미어린이집이 있다. 문 앞에는 엄마, 아빠와 헤어짐이 아쉬운 아기들이 울음소리와 눈물로 호소한다. 나, 출근하기 싫다고,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고.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손에서 떨어져 어린이집 안으로 사라진다. 아파트 단지 내, 삼삼오오 모여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이별의 아쉬움을 담은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어린이집, 유치원으로 출근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에게 "나 괜찮아, 엄마 걱정하지마!"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엄마의 마음을 위로한다. 아침마다 일어나는 애틋한 부모와의 이별 장면은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다.

 심리학에서는 적어도 만 3~5세까지는 엄마와 함께, 엄마의 품속에서 사랑의 감성을 느끼며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형성되는 정서적 감정이 평생 그 사람의 삶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젖떼기만 끝나면 어린이집에 가야만 한다. 부부가 함께 직장에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과 아이를 맡아서 돌봐줄 곳이 없기에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현시대가 만든 제도권의 혜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헤어진 아이는 원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성을 배우고 지적인 성장을 이룬다. 하지만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한 감성을 엄마로부터 느끼고 알게 되는 중요한 시기를 그냥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동그라미의 꼬마 손님, 7세 아동의 경우 상담센터에 들어오면서 "하이티처!" 이렇게 인사를 한다. 존댓말을 가르치고 인사와 예절까지도 상담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원장님이 "우리말로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보자"라고 했더니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린이집에서는 영어로 인사해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데 하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종일반으로 편성돼 저녁까지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다가 퇴근한 엄마의 손을 잡고 동그라미에 온 아이의 표정은 온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엄마, 아빠처럼 피곤에 지친 모습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를 번쩍 들어서 안아줬다. 아이는 마치 보금자리라도 되는 양 폭 안겨든다. 과자와 간식을 먹이고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놀아주고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집에 돌아온 것처럼 우선은 마음을 쉬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물을 먹은 화초가 살아나듯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재잘거리며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되찾았다. 외부와 차단된 상담실은 무한 자유를 선사해준다. 신문지를 마음껏 찢어서 뭉쳐서 던지고 그 속에 파묻혀 뒹굴면서 서로 장난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상담실은 난장판이고 완전 무질서다. 하지만 아이는 그 속에서 질서를 스스로 찾아내고 소중한 인성을 형성해 간다. 친구와 선생님에게 화났던 불만도 쏟아내고 심지어 자신을 야단친 엄마가 너무했다며 서운했던 마음도 털어놓는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하면서 상담 선생님과 둘만의 비밀도 만든다. 모든 것을 수용해주고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받는 상담 시간은 아이를 행복하게 했다.

 요즘 TV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내 아이를 1등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것을 위해 부모의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부모가 원하는 그것을 해내기 위해 아이들은 정체성을 잃은 채 앞만 보고 달려간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나는 누구일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나 여유도 없이 등 떠밀려 목표를 향해 무한 질주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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