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02 (금)
풍요한 사회, 가난한 개인
풍요한 사회, 가난한 개인
  • 하성재
  • 승인 2019.01.17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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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우리는 이미 `정보화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보가 사회의 행동과 가치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가 정보를 제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 없이는 정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분명 기술이 지배하는 기술 사회이다.

 그런데 기술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술과 기술의 사용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커져 온 것이 사실이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이 기술의 발전은 기술의 본질적 특성상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함께 안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유익과 폐해를 동시에 경험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테크노피아`나 `첨단 기술 사회` 등의 단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장밋빛 희망만 강조돼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반성하고 조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과정일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의 책 `부유한 노예(The Future of Success)`는 이렇게 급성장하고 있는 첨단기술경제의 빛과 그늘을 짚어보며 균형 잡힌 사회와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지금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가? 삶을 꾸려가고 있는가?"이다.

 점점 편해지고 세련된 첨단기술경제 속에서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생계를 꾸려가는 것과 삶을 꾸려가는 것,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첨단기술경제의 풍요 이면에는 가족의 붕괴와 지역 사회의 분화, 하루의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일에 바치고 있는 모습이 있다.

 라이시는 이를 `부유한 노예`라고 부르며, 이러한 그늘이 존재한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풍요한 경제 구조 안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PC, 인터넷, 사물인터넷 등이 존재하지 않던 몇십 년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리고 있으며, 일이 아닌 삶을 위해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미국 서부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한인교회의 목사였던 절친이 돌연 목사직을 던져버리고 목수가 됐다. "목사직을 맡고 있을 때에는 일이 내 삶의 전부였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 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와 가정`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다"는 것이 친구의 대답이었다.

 물론 "배가 물러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여기에는 조직의 풍요를 위해 더 많은 개인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첨단기술경제라는 공룡과 맞서 싸울 `이 시대의 시민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삶의 척도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재산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삶의 균형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돈을 벌기 위한 일과 삶의 나머지 부분의 균형을 위한 힘든 싸움을 단순히 한 개인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균형의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하는 사회 현상의 큰 흐름에 대해서 대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DINS`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DINS(double income, no sex)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인데 침대에서 잠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못 할 정도로 항상 피곤함에 절어 있는 맞벌이 부부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가족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더 필사적으로, 더 불안해하며, 더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는 풍요의 그늘에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가난해졌다. 하루에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일에 바치고 있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또 생계를 위해 가족, 친구, 이웃, 지역공동체라는 수많은 관계를 조금씩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우리 모습이다.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면 신의(信義)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 끊임없이 일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자꾸 높아지고 있으며 수입 감소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성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라이시는 "우리의 정신적 발판, 관계의 풍성함, 무너지지 않는 가족, 통합된 지역사회"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무엇인가 더 큰 것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순간순간 답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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