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으로 켜는 나의 꿈…‘희망 선율’ 전할래요
바이올린으로 켜는 나의 꿈…‘희망 선율’ 전할래요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9.01.09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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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여자중학교 3학년 백온유 양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사천여중 3학년 백온유 학생.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사천여중 3학년 백온유 학생.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이올린 연습 매진

개천예술제 콩쿠르 최우수상 등 잇단 수상


“꿈 이루면서 사회봉사… 단기 목표는 국제 대회”



어릴 때부터 뚜렷하게 그려 온 꿈

레슨 받는 건 사치란 생각 들지만

바이올린 연주는 내 인생의 사명

인내하며 한걸음씩 나아가죠



 “정말 피땀 흘려 바이올린을 연습하렵니다. 훗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선율을 전할 수 있게요.”

 사천여자중학교에 다니는 백온유 양은 어린 아이 답지 않게 ‘피땀 흘리는’ 심정으로 바이올린을 켠다. 가정 환경이 어려워 희망의 날갯짓을 하려 하지만 바이올린을 잡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17세 아이로서 부모님의 힘든 얼굴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꿈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현실이라는 유리 천장이 늘 그녀의 머리 위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에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 천장을 깨기 위해 손에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노력한다.

 백온유가 처음 바이올린을 만진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다. 온유가 3살일 때, 그녀의 어머니는 지인에게 바이올린 무료 레슨을 받고 있었다.

 “어머니의 레슨 선생님이 저에게 작은 유아용 바이올린을 주셨어요. 선생님은 어린 제가 악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놀라워하셨고 6살때부터 본격적인 지도를 해주셨어요. 당시 가정환경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한 달에 5만 원을 받으며 한 달에 두 번, 창원에서 먼 사천까지 저를 돌보기 위해 와 주셨죠.”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 온유는 레슨 교사의 권유로 마산 동서음악 콩쿠르에 나가 그곳에서 전체 대상을 받았다. 당시의 현장을 온유는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긴장을 잊고 부드럽게 바이올린을 만지면 나오는 꿈결 같은 선율, 자신의 연주를 음미하는 사람들, 짜릿한 박수갈채. 모든 것이 설레고 특별했다. 그녀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게 마음에 새겨졌다.

 이후 온유는 국제 음악 협회 콩쿠르와 대구 예술대 콩쿠르에서도 입상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잘 돼 진주시향 단원인 새로운 교사에게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개천예술제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넉넉한 지원 아래 갈등 없이 꿈을 꿨었다. 초등학교 5학년, 그녀의 아버지 사업이 기울기 전까지 말이다.

백온유 양은 첼로를 배우는 동생과 진주 유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여러 곳에서 함께 연주를 펼친다.
백온유 양은 첼로를 배우는 동생과 진주 유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여러 곳에서 함께 연주를 펼친다.

 온유는 같은 해 진주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 오디션에 합격했다. 달라지는 환경에 부단히 노력했지만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에 비해 여건은 좋지 않았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일주일에 2번에서 4번까지 레슨에 집중하지만 그녀는 콩쿠르를 두 달 앞두고 한 달에 한 번, 총 2번의 레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던 개천예술제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는 쾌거를 얻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온유는 더 이상 레슨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미 그동안 많은 대출로 레슨비와 콩쿠르 비용을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악기를 손에 쥐면 부모님의 얼굴이, 나의 현실이 아른거렸어요. 사실 바이올린 레슨은 사치였습니다. 빚을 져 가며 콩쿠르에 나가는 것도 안 될 일이었죠. 내가 과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저에게 꿈만은 포기하지 말아달라 얘기했어요. 너무도 미안하면서 또 감사했습니다.”

 온유가 중학생이 되자 기회는 찾아왔다. KB청소년음악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한 달에 4번 무료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덕분에 콩쿠르에도 나갈 수 있게 됐다. 연주를 향한 갈증이 기회를 만났다. 온유는 중학교 2학년 경남 중등학예대회에서 1등을, 지난해 경남예고 콩쿠르에 2년 연속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참고 견딘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집에는 벅찬 비용이 들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받은 장려금 덕분에 도움이 됐다고 부모님이 말씀해 주셨죠.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정말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경남예고 진학을 앞둔 온유는 늘 가져왔던 이 의문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꿈은 더 뚜렷해져 간다. 그녀의 단기 목표는 국제 콩쿠르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면 연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것이다. 자신처럼 힘든 아이들을 위해 헌신도 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제 노력을 그들에게 얘기하며 부푼 꿈들을 응원해줄 셈이다.

 그러나 아직, 그녀에겐 넘어야 할 벽들이 있다. 그녀와 오래 함께 해온 바이올린은 더 이상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매일 기본기를 연마하지만 적은 레슨 횟수는 온유에게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꿈은 세계다. 하지만 그녀의 환경은 늘 사지를 붙잡는다.

지난해 백온유 양이 참가한 경남 초ㆍ중등 음악축제.
지난해 백온유 양이 참가한 경남 초ㆍ중등 음악축제.

 온유는 자신의 동생들을 떠올렸다. 첼로를 연주했던 동생, 함께 진주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이 돼 복지관 등을 다니며 정기연주회를 열었으나 지금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플루트를 배우던 동생도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녀는 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언니가 되고 싶다.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도전한다면 이룰 수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 동생들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의 지지대다.

 “언젠가 독일에서 과르네르라는 바이올린을 무상으로 지원받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주의 무게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 오롯이 위로가 된 것은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였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해 온 것은 바이올린 연주밖에 없어요. 저에게 바이올린은 제 인생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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