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01 (금)
셀프서비스와 소비자 권리의 실종
셀프서비스와 소비자 권리의 실종
  • 이광수
  • 승인 2018.12.27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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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얼마 전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관람하기 위해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CGV를 찾았다. 이 극장은 시티 세븐 3층에 있어서 L마트에 장 보러 갈 때면 좋은 영화프로가 있는지 확인한 후 여유가 있는 날 영화를 감상한다. 몇 달간 계획한 책 읽기에 푹 빠져 지내다가 오랜만에 극장에 갔더니 매표방식이 셀프 티케팅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운터 서빙은 팝콘이나 음료수를 파는 여직원 두 명이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경로우대(?)라 직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별도로 표를 사야 하는데 카운터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는 것이 질색인 나는 셀프 티케팅을 하려다 단념하고 극장을 나와 버렸다. 잡친 기분으로 집에 와서 작은 화면이지만 유튜브로 영화를 감상했다. 언젠가 TV 명화극장에서 상영되면 다시 볼 생각이다. 셀프서비스는 내가 3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실감했다. 여행하기 전 현지에서 엔화 동전을 반드시 환전해야 한다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일본에 가니 자동판매기 천국이었다. 20년 후 우리나라도 일본을 능가할 정도로 무인 자동판매기 전성시대가 됐다. 자동판매기는 셀프서비스의 무인기계화 시스템으로 소비자와 공급자에게 편리성과 즉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혁명적인 판매방식이다. 그러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한 매매행위가 아니라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인간적인 정서가 오가는 통로가 된다. 물물교환에서 시작된 장마당은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5일 장터는 단순히 물건이나 음식을 팔고 사는 행위뿐만 아니라 인정이 흐르는 곳이다. 친구도 만나 국밥도 함께 먹고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서로의 소식을 듣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가 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종업원의 서빙이 맘에 들고 친절하면 나중에 계산할 때 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서양에선 팁이 소비자의 의무사항처럼 관습화된 사회이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식당이나 호텔에서 서비스 팁을 주지 않으면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업소마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감원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새 정부의 집권공약인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달성을 위해 인건비 인상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법제화함으로써 생긴 후유증이다. 아직 시행령이 공표되지 않았지만 유급휴일산입 문제로 최저임금 인상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일용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은퇴자에게 제2의 인생 출발 일터로 인기를 누리던 아파트와 상가건물 등의 경비직에 대한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무인경비시스템으로 경비인력을 아예 대체하거나, 최저임금인상 억제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근무시간을 줄여 휴식 시간을 길게 주는 편법이 동원돼 경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직종이 아르바이트 일용직이다. 대학생과 단순 노무자들의 주 일터인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지금 실직의 위기에 처해 있다. 시급으로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아르바이트일용직을 주로 고용하는 편의점이나 소규모 자영업자, 요식 숙박업소 업주들은 고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가족이 영업에 동원되거나 셀프서비스로 종업원을 줄이고 있다. 시급 1만 원을 주고도 영업이익이 나면 점주나 알바생도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주고 나면 점주의 월급만큼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청년실업난 해소를 위해 공공직의 정규화와 신규인력 증원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수백만 명에 이르는 시간제 서비스직 종사자의 임금보완책을 강구하기에는 정부재정에 한계가 있다. 여기에 셀프서비스시스템 구축이 민간부문의 최저임금인상 자구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단순한 반복 작업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은 일부 특수상담직 등을 제외하고는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AI가 실생활에 응용되면서 음성지시만으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될 날이 머지않았다. 업소에서 손님을 안내하거나 식당의 서빙부터 조리까지도 AI를 탑재한 로봇이 담당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중 자율주행 자동차의 발전 속도가 AI 산업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생애주기에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인간과 로봇 간의 러브스토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미래학자들은 AI가 초래할 미래사회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와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감성으로 느끼고 신체로 접촉함으로써 희로애락을 표출한다. 식당에서의 외식이 집밥처럼 먹을 음식을 직접 갖다 나르고(뷔페식의 자기선택행위는 제외) 테이블세팅도 하며, 빈 그릇 뒤치다꺼리까지 셀프로 한다면 굳이 외식할 필요가 있겠는가. 손님으로서, 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릴 대접(서빙)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비자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셀프서비스 만능주의는 기계문명이 낳은 비인간적인 소비패턴이다. 소비자는 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저임금제 시행에 따라 일용서비스직 종사자의 대량실직을 초래하게 될 셀프서비스 시스템 확대구축에 대한 정책적 대안검토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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