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09 (토)
술독에 빠진 나라
술독에 빠진 나라
  • 이광수
  • 승인 2018.11.18 17: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광수 소설가

 밤늦게 TV를 보면 인기리에 방영됐던 연속극의 여주인공이 나와 소주병을 들고 술 권하는 광고를 한다. 미녀 탤런트의 유혹에 술 생각이 난 주당이 냉장고의 문을 열 때이다. 요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치킨을 안주삼아 소주 마시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긴다. 특히 독거세대가 증가하면서 여성음주자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대한민국 공공시설물이나 탈것에는 술 광고가 넘쳐난다. 가히 술독에 바진 한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술은 사람과 사람간의 케뮤니케이션 증진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생판 낯선 사람도 술 한 잔이 오가면 금세 지기처럼 말문을 트게 한다. 모르는 사람에겐 냉정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는 한국인들이 어쩌다 모임 등에 동석하여 술잔이 오가면 정겹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래서 모든 의식(경조사)에 반드시 술이 끼어든다. 제주를 음복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마시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경사스러운 날엔 축배를 들고 ‘위하여!’를 외친다. 참 의미 있고 보기 좋은 풍습이고 관습이다. 이처럼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술이 마약과도 같은 위험한 물질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만취한 운전자가 모는 외제차에 치어 꽃다운 나이에 숨진 청년에 대한 영결식이 있었다. 그의 죽음을 기려 ‘윤창호 법’이 발의돼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법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이 음주운전으로 적발 되어 그 당으로부터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 노는 한국정치인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음전운전의 악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4번이나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가수 매니저가 검문하는 경찰 순찰차를 들이받고 도주하다 체포, 구속됐다. 제 정신이 아니다. 모 기초지자체 의회의장이라는 나리(?)께서는 회식 술자리에서 후배의원과 언쟁하다 쌍방폭행으로 망신을 당했다. 의회 의원끼리 무슨 충성 맹세를 하는가. 소가 웃을 일이다. 지금이 조선시대인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런 사람들이 선량이라니 기초의회 무용론이 나올 법도하다. 어디 그 뿐이랴. 재벌 2~3세들의 주취폭행사례는 넘치고 넘쳐난다. 술만 마셨다 하면 뭐만도 못한 짓을 서슴지 않는 주당들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멍들고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미투도 알고 보면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에서 비롯된다. 일상사처럼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원인도 대부분 알코올의존증 부모와 그 가족들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그런 부모나 가족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정서불안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청소년 범죄와 일탈행위는 부모 일방의 상습과음으로 인한 기정불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 되고 있다.

 알코올중독의 문제는 술을 상습적으로 마시면서 자신들은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자기인식부재에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에서 말하는 과음의 기준은 소주잔으로 남성의 경우 2잔반, 여성의 경우 1잔 반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 퇴근 무렵 술 한 잔하고 싶은 생각이 일상적으로 나는 사람이나, 식사 때 반주로 술 한두 잔을 상습적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의존증 환자에 속한다고 한다. 술은 마시는 사람에 따라 보약이 될 수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기분이 우울할 때 가장 손쉽게 손이 가는 것이 술이다. 그 술이 기분을 업되게 해 우울한 기분을 해소 시킨다. 그러나 과음은 자신과 가정은 물론 사회전체를 병들게 한다. 지금 정부에서는 연간 1천600억 이상을 투입해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술에 관대한 사회관습 탓인지 금연 예산의 100분의 1에 불과한 16억 정도가 알코올의존증 환자 클리닉 예산으로 책정되어있어 퍽 대조적이다. 정부에서는 뒤늦게나마 ‘윤창호 법’제정 발의를 계기로 음주장면광고제한, 학교, 병원 등 공공지역에서의 금주구역 지정(2000년), 지하철, 공항 등에 주류광고를 금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자 클리닉센터를 증설해 음주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데 힘쓰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절주, 금주시책을 펼쳐도 알코올의존증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인식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술 취하면 뭐가 된다는 속된 말이 있다. 한 잔 하면 실수할 수도 있고, 내 돈 내고 내술마시는데 무슨 참견이냐며 억지 부린다. 그들이 하는 무례한 행동을 예사롭게 용인하는 사회분위기 또한 정상이 아니다. 특히 솔선수범해야 할 정부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두주불사를 무슨 훈장처럼 자랑하고, 그런 행동을 조직 리더의 권위로 착각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가 음주에 관대한 사회가 되는 데 일조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가는 잔’ ‘3인 1조, 4인 1조’를 외치면서 폭탄주를 돌리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한 술독에 빠진 한국에서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다.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술을 마시고 또 그 술이 사람을 마시는 악습이 계속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잘못된 음주문화는 우리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국가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알코올중독의 폐해를 이전시키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