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질서ㆍ예의ㆍ친절ㆍ성실 배워야
일본의 질서ㆍ예의ㆍ친절ㆍ성실 배워야
  •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 승인 2018.10.28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우선 기자가 이 글을 쓴다는 자체가 왠지 기분이 좀 씁쓰레하다. 왜냐면 일본과 우리나라는 과거 뼈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이 시대에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배척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일선의 행정기관은 물론이고 개인은 일본의 좋은 것들은 배워서 일상생활에 접목시켜 응용하는 것도 좋을듯싶다. 또한 일선 행정기관은 좋은 것은 과감히 받아들여 선진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며, 개인은 이를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묘책 중 하나인 것이다. 이 같은 핑계로 기자는 지난 주말을 이용해 며칠 동안 일본에 가족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솔직히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이왕 출발한 거 여행을 즐기면서 일본에 대해 똑바로 배워보자고 작정했다. 첫날 김해공항에서 출발,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고배 공항, 역을 거쳐 오사카, 산노미야, 교토에 도착했다. 교토에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니면서 열차와 전차를 타고 내리고 했다.

 교토는 일본의 심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 규모가 엄청났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주 웅장한 규모의 교토역사, 역사 바로 앞 교토 타워호텔, 중앙우체국, 전력회사 등 초 고층빌딩들이 쭉 버티고 서 있었으며, 거리에는 질서정연한 수많은 시민들이 다들 바쁘게 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특히 교토 시내를 운행하는 전차와 시내버스들의 출발지가 교토역이었다. 역사 바로 앞 시내버스 정류소에는 수십여 대의 버스들이 코스별로 승ㆍ하차를 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의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2명 이상이면 무조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이러니했다. 수십여 곳의 승차장에도 똑같은 현상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처럼 새치기는 절대 없었다.

 한국에서 예약한 숙소가 개인 투룸이어서 교토역에서 20여 분 떨어진 거리에 있기에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숙소의 위치와 시내버스 노선번호를 물었다. 교토 시민들은 자기도 바쁠 것인데 승차장까지 안내한 후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면서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를 타라고 했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목적지까지 부탁하고 자리를 떴다.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해서 하룻밤을 묵고 교토역에 다시 도착해 여행을 시작했다.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갖가지의 풍경과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일본의 도로와 시내버스 구조는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버스 기사 운전석도 오른쪽이며, 도로의 진행 방향도 완전 다르다. 상행선이 왼쪽이고, 하행선이 오른쪽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는 구조로 돼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여행을 가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버스요금도 내릴 때 낸다.

 여기서 기자가 일본인들의 생활상에서 배운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첫째, 시내버스 기사들이 너무 친절하다. 몇 시간 동안 시내버스를 타 봤지만 손님이 타거나 내릴 때는 무조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십시요! 를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있었으며, 또한 운행 중 주요 지점, 건물, 관광지 등을 헤드 마이크로 계속 안내해줘 여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게 했다.

 둘째, 오사카, 교토, 고배 등 주요시내의 버스정류소에는 안전원이라는 조끼를 입고 버스노선과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들이 시내를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길을 헤매면 버스 시간은 물론이고 노선번호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으며, 인근 지역의 건물과 시장을 물으면 수백여m 떨어진 횡단보도 앞까지 다가와서 안내를 해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셋째, 불법주정차가 아예 없었다.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관광지로 가고 있는데도 길가에는 아예 불법주차가 없었다. 신기했다. 어쩌다 한ㆍ두 대 발견되면 특송 차량이었다. 그리고 시내 마을의 이면도로 간선도로, 소방도로도 몇 일을 다녀도 불법주차를 볼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불법주정차 단속요원은 물론 교통경찰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주택가 자투리 땅도 소형 주차장을 만들어 무인자동화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주차장의 규모도 적게는 3대에서 5대 정도로 소규모로 운행하고 있었다. 땅 주인은 주차비용을 수입원으로 삼고 운전자들은 안전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었다. 마을 규모가 조금 큰 지역은 주차공간을 좀 넓게 잡아 10대 이상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월정주차를 받고 있었다. 또한 개인주택이나 상가지역에서는 건물부설주차장을 100% 활용해 다들 자기집의 전용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넷째, 장묘문화가 발달돼 있었다. 우리의 현실은 산악지방이라서 그런지 여행을 하다 보면 도로변의 양지쪽이나 풍수적으로 자리가 좋으면 어김없이 분묘들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일본의 야산이나 마을의 뒷산에는 아예 묘지가 없었다. 간혹 마을의 외진 곳에 봉분이 없는 조그마한 비석이 설치돼 있는 공동묘지가 있긴 했다.

 끝으로 일본의 주요간선도로와 일반도로에서는 단속카메라가 거의 없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 지줏대에 조그마한 카메라가 설치돼 있을 뿐이다. 절대 차량 운전자들은 아무리 급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이 습관화돼 있었다. 사람들과 차량들은 많이 붐비고 있었으나 교통신호는 철저히 지키면서 다들 질서와 예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어 일본 사람들은 선진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듯이 조용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있어 청렴하면서 질서와 예의, 친절, 성실함이 몸속에 베어 있었다. 위에서 기자가 몇 가지 열거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와 일본의 생활상과 현실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일본의 나쁜 과거 역사는 머릿속으로 기억하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것들은 배워서 우리 생활에 활용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