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위기
보수와 진보의 위기
  • 오태영 사회부장
  • 승인 2018.10.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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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지난 세기 성장, 세계화라는 글로벌 지배가치는 필연적인 내재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이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평화, 생명, 환경, 인간중심이라는 가치를 기치로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문재인 정부와 진보적 진영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적어도 20년 전부터 읽고 준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안보와 성장이라는 식상한 화두에 머물러 있던 보수진영은 무감각과 무사안일에서 젖어있다 날벼락을 맞았다. 평화, 생명, 환경, 인간중심이라는 가치가 진보의 전유물일 수는 없지만 보수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대비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정권교체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방아쇠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더 깊은 곳에는 이런 보수진영의 무감각과 무사안일이라는 화약이 충분히 장전돼 있었다. 이런 점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현재 자유한국당만 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무능세력들이 계속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도 든다. 최근 보수의 재건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새로운 가치로의 무장 가능성은 매우 회의적이다. 여전히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튼튼한 안보라는 기존의 가치만 되풀이할 뿐이다. 물론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튼튼한 안보는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우리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여기는 다수 국민의 생각을 현재의 보수정치인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유례없는 압승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간이 흘러가면 지지세가 꺾일 것이라는 반사이익에 기대는 모습이 여전하다.

 보수의 재건은 우리나라가 안정적이고 바른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이 보여주는 세계관과 국정 철학은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생각과 가치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보수정치의 재건이 필요하다. 보수정치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정치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민이 직접 맞상대라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고용 대란과 투자외면, 부자들의 지갑 닫기와 소비의 해외 유출은 이런 징조로 볼 수 있다. 이럼에도 치열한 반성과 환골탈태하는 보수정치의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방송에서 의례적인 반성과 새로운 각오를 이야기할 뿐 어느 누구도 용기 있게 개혁에 나서는 자가 없다. 가늘고 길게 살자는 기회주의만 득실댈 뿐이다. 진보 세상에서는 목소리 죽이고 살아남는 게 최고라는 자조와 패배주의만 보인다. 모르긴 해도 다음 총선은 임기 4년을 연명하기 위해 스크럼을 짜는 기득권 보수정치인들과 새롭게 진입하려는 신진정치지방생간의 투쟁이 될 것이다. 본선은 그다음이다. 양 김시대에는 유망한 정치신인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정치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작금은 이런 노력을 할 주체도 의지도 없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비대위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우리 정치의 위기는 비단 보수진영내부에서만 있는게 아니다. 현 집권당과 진보진영내부에서도 감지된다. 그 위기는 다름 아닌 그들의 집권을 가능케 했던 평화, 생명, 환경, 인간중심이라는 가치에서 엿보인다. 문제의 근원은 이 가치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 가치에 매몰돼 있는 느낌이 짙다. 획일적인 탈원전과 대체에너지 개발 가속, 시장의 수용능력을 도외시한 최저임금정책과 주 52시간 근무제, 균형감을 상실한 북핵정책과 성급한 군사무장 완화 등등은 이런 가치 구현에 경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가치는 인간에 봉사하는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인간이 가치에 봉사하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재앙의 역사를 수없이 봐왔다. 인간이 사는 현실은 가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다. 진보진영 내부의 성찰과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호황 속에서 우리만 질척대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정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이자 책임회피다. 진보와 보수 모두 새로운 자성과 변화가 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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