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13 (금)
부끄러움을 훔친다
부끄러움을 훔친다
  • 김병기
  • 승인 2018.09.18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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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연지지구대장 경감

   밤에 교통사망사고가 나지 않도록 취약지역 순찰을 당부하고 집에 왔다. 대문을 넘어 자전거를 대는데 조선오이 심은 텃밭에 오줌 누는 사람이 있었다. 계단 안쪽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있고 불도 환하게 켜놓았는데…. 심하다 싶어 한마디 할까 하는데, 입에 문 담뱃불을 담 넘어 마른 풀과 쓰레기 더미로 던졌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 담뱃불을 그리 던져 불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하는데, “아, 불났어요?”하며 바지춤을 올려 돌아보며 몸을 휘청인다. 그 순간 술 된 분이구나 생각에 말없이 대문 밖으로 나갔다. 1m 이상 우거진 풀과 쓰레기 더미 속에 불씨가 보이지 않아 찾고 있는데, 담뱃불을 던진 아저씨가 다가왔다.

 “불났어요?” 재차 묻는데 역겨운 술 내음이 풍겨 뒷걸음질을 치며 “불이 꺼져야 할 것인데 보이지 않는다”하니 “불도 나지 않았는데, 뭔데 시비를 거느냐”며 손목을 잡고 흔든다. 잡힌 손을 뿌리치며 “불이 나지 않아야 되지요, 아저씨는 가면 되지만, 불 나면 차량과 주변 집은 어떻게 하느냐”해도 막무가내로 불도 나지 않았는데 시비를 건다고 큰소리다. 술 취한 사람과 시비는 피해야 함을 알기에 “아저씨, 불이 나지 않아 다행이고, 조금 지켜보고 갈 것이니 그냥 들어가라”고 권해도 이제는 멱살을 잡고 흔들려 한다. 술을 먹어 그런지 손아귀 힘이 세 방어가 어려웠다.

 다투는 고함소리에 가게 여주인과 아내분이 분이 왔다. 화장실에 간 사람이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며 무슨 일인지 물어 경위를 설명하는데 다시 멱살을 잡아끈다. 이리하면 안 된다며 아내와 가게 여주인이 만류해도 안 되자, 술이 너무 취해 말이 안 되니 보이지 않게 조금 피해달란다. 못이기는 척 옆집으로 가는데 “불나지 않았는데 시비를 건다”고 고함이다. 양옆에서 겨우 부축해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집에 가 봉변을 말하니 아들 녀석이 황급히 나간다. 괜히 술 취한 사람과 다툼이 되면 안 될 것 같아 아들을 불렀다. “얼굴이라도 봐야 될 것 아니냐”해 그만두라 만류했다.

 다음날 가게 여주인에게 물었다. 어디 살며 무슨 일을 하는지 묻자, 얼굴 잊을만하면 오는 평소 점잖은 분인데 자기를 봐서 그냥 넘어가 달란다. 아직도 잡힌 손목이 얼얼해 사과를 받고 싶다 하니 치료비를 주겠다며 없던 일로 하란다. 감싸는 것이 언짢아 연락처를 달라 해도 모른다한다. 당한 행패에 화나고 가게 여주인도 괘씸했다. 며칠 뒤 경찰서 뒤 은하탕에서 옷 벗고 탕에 들어가는데 목욕을 하고 나가는 뒷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유리창 넘어 살펴보니 담뱃불을 던진 그 남자다. 그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하더니 멀리 가지 못 했구나 싶어 가슴이 뛰었다.

 지금 나가 만나지 않아도 언젠가 만나 사과를 받아야지 하는데, 받으면 뭐하나 잊고 털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다시 찾은 목욕탕 탈의실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아저씨, (나를) 알겠느냐”하니 아는 체 하며 나중에 술이나 같이 하잔다. “아저씨 때문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하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기도 손목이 아파 물리치료를 받았다 적반하장이다.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쪽팔림을 모르는 사람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귀 기울여 들을 마음의 소리가 있어 양심의 소리를 듣는데, 내 부끄러워 가슴에 숨겨둔 부끄러움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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