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스런 언론의 침묵
우려스런 언론의 침묵
  • 오태영 사회부장
  • 승인 2018.08.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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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국가보훈처가 재향군인회, 고엽제전우회, 특수임무유공자회 등 군관련 단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입법예고를 했다. 단순히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현행법 조항을 개정해 정치집회에 참석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조항을 신설했다. 특정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특정공직후보자를 지지.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교사, 공무원도 정치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입법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시대착오적 정치활동 규제를 하려는 것인지 의아하다. 이들의 정치활동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행법이 이들의 정치활동을 못하도록 하고 있어도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물론 보수정권과 대체로 정치적 입장을 같이해온 탓도 있겠지만 정부가 족쇄를 채운 적은 없었다.

 국가보훈처가 처벌조항까지 만든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짐작컨데 진보진영이 보기에는 이들이 보수정권의 돌격대 역할을 해온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보훈단체는 태극기집회를 비롯 중요 시국사안때마다 안보와 자유를 외치며 보수의 최선봉에 서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눈엣가시같은 이들 단체의 정치활동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설 수 있다. 5ㆍ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박승춘 전 보훈처장까지 처벌하는 마당에 이참에 보수 돌격대의 기를 꺾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음직하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 진보진영의 편협함을 드러내는 자충수에 다름없다. 고등학생에게까지 선거권을 주는 선거연령 낮추기를 시도하는 진보진영이 아닌가. 학생인권조례까지 제정하며 정치적 입장표명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쪽이 바로 진보진영이다. 정치활동 보장을 확장하려는 진보가 유독 국가에 공헌한 이들의 정치활동에는 이토록 인색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국가보훈처가 이런 입법예고를 한 것은 비단 보훈처만의 입장은 아닐 것이다. 정부ㆍ여당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정치활동 규제 명분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적 동의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표적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한다. 명분도 없는 정치활동 규제는 지방정권과 언론까지 장악한 정부의 오만이 위험수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방송은 이미 비판기능이 마비됐고, 상당수 신문도 정부비판에는 몸을 사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시민단체도 이미 오래전부터 현 정부의 충실한 지지기반이다. 많은 보도가 정부가 주는 브리핑자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브리핑자료와는 다른 보도는 규제까지 하려 한다. 군사독재시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범위한 침묵의 장막이 작금의 한국사회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보훈단체 정치활동 규제와 관련된 각 언론의 보도를 보면 거의가 보훈처 발표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훈단체도 불이익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보훈단체 정치활동 규제는 반대를 용납치 않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야당은 지리멸렬이고, 지식층의 올곧은 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 비판사설 대열에 동참한 미국의 언론들이 생각난다. 정부 없는 언론과 언론 없는 정부 중 정부 없는 언론을 주저 없이 선택하겠다고 한 토머스제퍼슨은 언론의 타락은 상당부분 정차성에 의한 폭력과 악의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파했다. 우리 언론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언론이 침묵하면 국민적 역풍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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