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정쟁 수단으로 삼지 말라
‘판문점 선언’ 정쟁 수단으로 삼지 말라
  • 한 용
  • 승인 2018.04.3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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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용 편집국 부국장ㆍ정경부장

 역사는 수많은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며 발전한다. 토인비의 말이다. 오늘에야 새삼 이 말이 진리임을 되새겼다. 역사는 살아 숨 쉰다. 그래서 움직이며 변화한다.

 지난달 27일. 드디어 한반도 역사의 한줄기에 큰 획이 그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적대와 대결로 점철된 분단 질서를 허물고, 공존과 공영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다. 이른바 ‘판문점 선언’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이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올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남ㆍ북ㆍ미 3자 또는 남ㆍ북ㆍ미ㆍ중 4자 회담 개최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와 적대행위 전면중지도 합의했다. 남북관계에 새 국면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정상외교는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번 남북 공동선언은 이전의 남북 선언보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은이 비공개 대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했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미국은 이런 류의 위장 평화 회담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우리의 문제를 엉뚱하게 중개자로 자임한 문 정권의 역할을 한번 주시해 보자”고 비꼬았다. 이어 “다시 한번 남북문제를 미북 간의 긴장 문제로 만들어 가고 있는 문 정권의 외눈박이 외교를 국민과 함께 우려한다”면서 ‘판문점 선언’ 그 자체를 비하했다.

 홍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을 필자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판문점 선언’을 한낮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으니 그의 논리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말이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였다. 이에 대한 이견은 없을 것이다. 남측은 북한의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하는 것을 회담의 조건으로 삼았다. 판문점 선언 3조 4항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 확인”이라는 구체적 명시도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하고 있는 트럼프를 향한 김정은의 입장표명으로 해석된다.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기존의 반복된 표현보다도 한 발짝 더 나아간 발언인 것이다.

 이즈음에서 홍 대표에게 반문한다. 언제 북한이 정상 차원에서 비핵화 의지를 문서화한 적이 있었던가. 남북 간 합의 문서에 비핵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지난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이는 남북 총리가 서명한 선언일 뿐이다.

 김정은은 ‘판문점 선언’을 내외신 언론 앞에서 공표했다. 내용도 1990년대와 다르다. 여섯 차례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발사로 핵무기 역량이 고도화된 시점에서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를 문서로 약속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는 해석이 분분하다. ‘판문점 선언’을 긍정적으로 보면 ‘진보’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보수’라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야당은 ‘차도 없는데 무슨 고속도로냐’고 비아냥댔다. 한ㆍ칠레, 한ㆍ미 FTA 협정 때도 그랬다.

 반대 속에서도 완성된 프로젝트는 우리 국민에게 풍요의 혜택을 주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때에도 마찬가지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반도 침략 예상은 둘로 갈라졌다. 선조의 선택은 최악이었다. 결국 조선은 왜란이 휩싸이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석연찮은 반대 논리로 반대를 이끌어내면 나라가 어지럽다.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국민을 이간시키면 나라가 잘 될 수 없다.

 나의 가슴은 보수이며 머리는 진보다. 때론 머리는 보수인데 가슴은 진보일 때도 있다. 내 몸통이 이런데 누가 나를 갈라놓으려 하는가. 나는 자유의지에 따라 나의 사고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 자유인이다.

 정치권은 얄팍한 논리로 국민을 가르려 하지 말라. 민족이 화합으로 가는 마당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태려 노력해야지 여기다 돌을 던지지 말라. ‘판문점 선언’을 지방선거에 활용키 위해 정쟁 수단으로 삼아서는 아니 되기에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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