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 오기를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 오기를
  • 허남철
  • 승인 2018.03.05 2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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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철 김해대학교 겸임교수 폴리진인성(性)문화연구소장

 이게 봄이냐?

 봄비에 실려 온 눈 부신 햇살이 경칩을 깨운다. 졸졸졸 흘러내리는 개울가 얼음 녹는 소리에 버들강아지 한들거리고, 아직은 차지만 온기가 있는 바람이 꽃망울을 핥으며 깊은 동면을 즐기던 나의 내면마저 깨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길고 긴 겨울을 ‘설한강풍(雪寒强風)’ 다 이겨 내고 봄은 왔건만 ‘이게 봄이냐?’라며 아직 겨울의 찌꺼기를 다 벗어 내지 못하고 남은 꽃샘추위를 원망한다.

 컴퓨터를 켜면 포털 사이트에서 핫한 뉴스를 빨리 보라고 커서가 미친 듯 깜빡거리며 울고 있다. 따스한 봄소식보다는 냉기 흐르는 소식으로 화면은 가득하다. 힘이 없어 억울한 사연에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화면의 구색용으로 장식 돼 눈망울 맺힌 커서만 껌벅거릴 뿐이다.

 청와대에 청원 중인 대형병원 신규간호사의 자살에 대해 피눈물 흘리며 억울함을 말하는 그녀의 남자친구와 가족, 그리고 주변인들의 절규는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

 그녀의 자살 원인으로는 ‘태움 문화’라는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학습된 무기력에 의한 자살이라고 한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ㆍ육체적 괴롭힘을 일컫는 용어로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이다. 의료인으로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으로 위계질서와 엄격한 교육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력이나 욕설, 인격 모독 등이 고질적 병폐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욕설이나 인격 모독은 자존감의 저하로 오히려 교육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잊은 채, 태움 문화는 비이성적으로 서사적 관습화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하루빨리 조직 내의 적폐인 ‘태움 문화’가 청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 다른 칸에서는 요즘 모든 남성을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미투 운동’에 역행하는 ‘10대 지적장애인 성폭행, 피소 20대 두 명 무혐의 처리 논란’에 어이없이 커서만 깜빡이며 허탈해하고 있다. 경찰은 16세 지적장애인 A양과 상습적으로 성관계를 가져 임신시킨 B, C씨를 소환해 조사했으나 A양은 형법상 미성년자인 만 14세 이상이며, 시내 모 병원에서 판정받은 지능지수(IQ)가 준 지적장애인 수준인 ‘76’으로 나타나 의사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B씨와 C씨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며, “A양과 합의하에 여러 번 성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혐의없음’이란 의견으로 고소를 한 지 몇 개월이 지나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A씨는 “B, C씨가 술을 마시자며 수차례 여관으로 유인해 만취 상태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양의 아버지는 창원의 모 병원에서 판정받은 A양의 지능지수는 지적장애 3급(50~70)에 해당하는 ‘58’의 수치로 판정됐으므로 B, C씨는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한 언론에서는 “성폭력 상담 전문기관에서는 경찰이 사건을 마무리한 뒤 A양을 재검사를 실시해서 지적장애 3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법이 얼마나 평등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뉴스의 도가니라 할 수 있는 ‘미투 운동’에서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세상을 흔들고 있다. 지적능력이 부족해서 누가 봐도 자발적 합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피해자가 장애인이면 인격도 없는 무존재로 보고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더욱 큰 문제이다.

 그리고 ‘미투 운동’의 피해자들에게는 민법을 적용하고 장애인에게는 형법을 적용하는 것이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이 아닌지 점검을 해봐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이들도 ‘여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건의 주체나 객체가 유명인이면 여론에 떠밀려 즉각적으로 조사하면서, 장애인이나 힘없고 빽 없는 미미한 존재들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므로 늑장 조사나 시간 끌기로 강한 자의 편익으로 판정이 나는 불공평한 결과로 초래돼서는 안 될 것이다.

 며칠 후면 ‘110주년 3ㆍ8 세계여성의 날’이 온다.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더 이상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장애 여성들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성적 차별을 받지 않고, 소외되지 않는 그런 온전한 여성의 날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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