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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기억ㆍ감정 쌓아 공감 나눠요
캔버스에 기억ㆍ감정 쌓아 공감 나눠요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8.03.01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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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림 작가의 작품 `잔영`(oil on canvas palette knife, 80x117㎝, 2017).

서예림 작가 유화 13점

최안과 갤러리시선 전시

몽환적 모노톤ㆍ나이프화

 하얀 도자 화분 속에 해바라기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뒤에 거친 상아색의 배경은 가야 토기의 표면이다. 이들은 저마다의 강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흙으로 구워진 가야 토기가 우리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의 풍파를 견뎠을까요. 천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 토기의 강함, 거센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해바라기를 봤던 유년시절이 떠올랐죠."

 김해 내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서예림 작가는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가 어울리는 화가다. 반달로 접히는 눈가에는 선한 겸손이 깃들여 있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이곳저곳에 걸어놓은 머루포도를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서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머루는 유년시절의 한 조각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밭으로 가서 늦게 돌아올 때 어린 여동생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머루를 따 먹었던 기억. 그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 작가에게 온기를 준다.

▲ 최안과 갤러리시선에서 작품 전시를 할 예정인 서예림 작가.

 그의 애틋함과 즐거움, 따뜻함이 남아있는 작품이라서 그럴까. 머루를 그린 서 작가의 작품 `향수`는 지난해 쟁쟁한 작품들을 뚫고 7월 부산 지검의 새 청사에 걸렸다.

 유화를 사용한 나이프화로 겹겹이 표현한 서 작가의 작품은 모노톤의 벨벳처럼 그와 닮은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그러나 또, 대담하게 내지른 나이프의 터치가 느껴지는 작품은 바위처럼 우직하고 거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서 작가는 원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여러 색을 섞고 또 섞어가며 원하는 중간색을 만들어 캔버스 위에 얹힌다. 그의 그림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구상화라 하기에는 흐리고 추상적인 멋이 있다. 서 작가는 "구상의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다 보니 새로운 시도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배경을 흩트리고, 또 사물을 흩트리다보니 반구상의 형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3일부터 31일까지 김해 최안과의원 갤러리시선에서 이런 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엔 그의 유화 13 작품이 전시된다.

 우아한 모노톤의 정통 유화와 섬세하고 혹은 대담한 나이프의 스트로그기법에서 오랜 내공이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가 정식으로 붓을 잡은 지는 십오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유화와 만나 마음에 사랑의 교향곡을 울렸던 것은 아주 오래전, 김해 가산의 한 시골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적 우연히 보게 된 잡지에서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보게 됐어요. `멋있다`고 생각했죠. 가슴이 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하고 싶어 졌어요."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삶에 치여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 작가의 뜻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고 가족과 생업을 위해 잠시 중국에 머물게 됐을 때 그에게 기회가 왔다.

 "이전에는 몰래 혼자 그림을 그리는 연습하는 정도였다면 중국에 가서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거에요."

 수십년을 참아온 `갈증` 때문이었을까. 그는 주변사람이 놀랄 만큼 그림에 대한 습득이 빨랐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억눌렀던 유화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유화가 아닌 다른 것에 욕심낸 적이 없어요. 두텁고 거친 질감,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발색.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유화의 기름이 지금처럼 냄새가 심하지 않게 개발되기 전에도 그 역하다는 냄새도 그저 좋았죠."

▲ 서예림 작가의 작품 `모정`(oil on canvas palette knife, 80x117㎝, 2017).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담겨 있다. 폭포처럼 쏟아 넘치는 게발선인장을 그린 `모정`에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친한 큐레이터분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키우던 선인장이었어요. 사랑을 받고 자라 화분을 넘어 잎이 넘쳐흐르던 그 선인장의 마디마디가 왠지 어머니의 눈물 같았죠. 그래서 제목을 `모정`이라고 지었어요."

 그는 자신이 작품을 그릴 때에 담은 감정이 타인과 공감될 때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유년기 기억을 옮긴 `해 질 무렵`이라는 작품을 경매에 올렸을 때, 작품을 낙찰한 분이 `내 고향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해줄 때. 이런 감정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감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 한쪽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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