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이름
가난의 이름
  • 이주옥
  • 승인 2018.01.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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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서양 속담에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이 대문으로 도망간다’는 말이 있다. 법정 스님은 마음의 가난, 즉 무엇에든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를 설파했다. 소설가 박경리 씨는 인생 말미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다. 시인 신경림 씨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고 그리움을 모르겠냐’(가난한 사랑의 노래 중)며 가난 때문에 연인을 떠나며 서러워했다. 이렇듯 가난은 소유의 반대편에서 많은 의미로 머무는 말이다. 그러니 어떤 말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행로나 사랑, 행복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어떤 가난이든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을 동반한다는 것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벽 별을 보고 일터로 나가 한밤의 달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는 현대인에게 살림의 가난은 살을 에는 듯 추운, 물리적ㆍ정신적 현실이다. 언제 잔돈 모아서 목돈 만드나 싶어 주식투자도 해보지만 순식간에 빈 깡통이 되기도 한다. 단발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가상화폐에 투자도 해보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제멋대로 들쑥날쑥, 말 그대로 빌딩 몇 채가 순식간에 세워졌다가 이내 허물어지고 만다. 아무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다독여도 가난은 슬프고 때로는 괴로운 것이다.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모아 가까스로 집 한 칸 장만해도 시도 때도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제 사정이 그 집 한 칸을 은행에 저당 잡히게 만든다. 겉으로는 내 것이지만 속으로는 내 것이 아닌 것. 곧 ‘하우스 푸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격무는 사람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은 물론, 취미 생활도 할 수가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늘 시간이 없고 쉬는 것을 잃고 취미 생활을 못하다 보니 어쩌다 틈이 나도 섣불리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마음의 행로와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타임 푸어’다.

 이 시대의 삶이 그렇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도 거부하고 결혼도 거부하고 하물며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추구하며 일을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저 멀리서 손짓만 하고 정작 자신은 일에 치어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하다. 마음에 짜증과 집착만 늘어 날 뿐, 공허하기만 하다. 이것은 ‘하트 푸어’라고 해야 할까.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대다. 대부분의 일들은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것이다. 사람들에겐 넘치게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할 일을 뺏긴 사람들은 남아도는 시간 앞에서 또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해서 지금 시간이 없다 해도, 지금 취미 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없다 해도 아쉬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리 너머 무지개가 있으니 조금 더 참고 걸으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무지개를 좇아 건넜지만 또 저만치 멀어져 있는 무지개를 좇는 형상이랑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때는 정작 또 마음의 공허를 메우지 못하고 남아도는 시간 앞에서 또 다른 허기를 느낄 것이 뻔하다.

 얽매임 없는 무소유야말로 삶이라는 얽매임에서 놓여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진리라고 역설한 노스님의 가난의 의미. 정한 목숨의 끝이 보이는 자리에서 욕심과 집착은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누구나 가는 저승길엔 아무것도 필요 없음을 깨달은 노작가. 그도 갖은 풍상 속에 사람들과 부대낌을 겪으며 한평생 사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을 터, 물질에 집착하고 시간에 끌려가고 사람에게 치인 삶이 오히려 괴로웠다고 말한다. 다 버리고 가난해지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했다. 진심 어린 가난의 역설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뜻한다. 우리가 직업을 갖고 직장을 얻는 이유는 보다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행복하기 위해서다. 일이 있으므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그 기본 위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취미와 여가도 필요하지 않던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삶의 탐욕. 그 탐욕을 버리기 위해 필요한 나만의 시간. 내 진짜배기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삶은 적잖이 내 탓이다. 정작 버릴 것은 무엇이며 또 정작 지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물질의 가난과 마음의 가난 앞에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진정 가난은 삶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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