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05:23 (일)
입맛을 싣고 달려요
입맛을 싣고 달려요
  • 이주옥
  • 승인 2017.12.2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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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도시의 밤 열시는 자동차 불빛들이 쏘아 올린 빛의 부스러기가 별이 돼 흩날린다. 곳곳에 뚫린 도심 터널 안은 자동차만 가득해 그 빛 부스러기조차 들어설 틈이 없다. 돌아가는 길인지 나서는 길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양방향 모두 시속 20km를 넘지 못한다. 라디오에선 크림을 잔뜩 얹은 카페라떼 같은 아나운서의 멘트에 실려 웨스트라이프의 My love가 흐른다. 문득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푸근해진다.

 지금 두 딸들은 인근의 돔 공연장에서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맞춰 소리를 지르며 몸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그들과 함께 별이 돼 날아가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딸들이 그들을 따라 행성 밖으로 사라질까 봐 터널 속에서 고개를 빼고 속도 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흥겨운 음악 따위는 이미 리듬을 잃은 지 오래, 오랜 정체에 속이 탄다.

 야식 배달 오토바이들이 마치 백미러를 부러뜨릴 기세로 바짝 달려들고 있다. 헬멧을 허술하게 눌러 쓴 배달 청년들은 차와 차 사이를 요리조리 드나들며 곡예 부리듯 지그재그로 거리를 질주한다. 양철로 만든 배달통엔 다양한 상표들이 질서 없이 붙어 있다. 피자, 치킨, 닭발, 족발, 오돌뼈 등등….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위해 요리된 짐승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자동차 소음에 섞여 더 요란한 것 같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찹쌀떡 장사들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밤하늘로 숱하게 날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바람 소리만이 골목 안에 옹그리고 있는 고요한 겨울밤에 쫄깃한 찹쌀떡 한 개 먹을 수 있으면 밤은 길수록 오히려 행복할 듯도 싶었다.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고학생이었을까, 찹쌀떡 한 개도 남겨다 줄 여력이 안 되는 가난한 가장이었을까. 그들의 절박한 목청이 아련한 추억의 유성음으로 남아있다.

 요즘의 먹거리는 다양하다. 24시간 영업하는 집을 골라 그들이 배포한 전단지를 보며 머리 맞대고 야식을 고른다. 어차피 그 시간에 고구마 찌고 부침개 만들기 번거로운 판, 거기에 생맥주나 콜라까지 곁들일 수 있으면 오늘 하루쯤 먹기 위해 산다고 정의 내려도 구차하지 않으리라. 분분한 의견이 모아지고 간택 받은 품목에 따라 콜 사인을 보내면 배달원들은 그들의 입맛을 싣고 달려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소비자가 주문하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빨리 달려야 한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매번 도로를 장악하는 자동차 행렬이 원망스럽다.

 비가 내리는 날 엘리베이터에 남아있는 고소한 치킨 냄새는 더욱 구미를 당긴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게 많이 내리는 밤이면 유독 밤은 더 길고 사람들은 잠들지 못한다. 빗물 뚝뚝 떨어지는 비옷 안에 행여 젖을세라 음식을 품고 눈 내리는 날에는 오직 눈만 보이게 방한복으로 무장한 배달하는 사람들. 시급하게 ‘조금 더 빨리’를 외치며 달려오다 보니 간혹 뭉개진 피자가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피차 서로를 민망하게 한다. 흐트러진 귀퉁이 몇 번 톡톡 쳐서 그냥 먹어도 되건만 굳이 되돌려 보내는 사람도 있다. 교환요청을 받고 되돌아가는 그들의 어깨가 땅에 닿을 듯 낮아 보인다.

 함께 달리는 많은 자동차들과 부딪힐 듯 곡예를 부리며 시시때때로 식은땀을 흘리지만 잠시도 멈칫할 수가 없다. 오로지 시간과 경쟁하고 시간과의 다툼만 있을 뿐이다. 도로 위에 미끄러져 넘어진 배달 오토바이를 간간이 목격한다. 그 곁에 뒹구는 치킨 조각은 가장 슬픈 현실의 자화상이다.

 도시의 거리는 자동차 반, 배달 오토바이 반이다. 도시의 공원 어디엔가 끼어 앉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무전기를 작동하는 그들은 이 시대의 슈퍼맨이다. 음식이 식거나 흐트러지면 가차 없이 퇴짜 놓는 사람들과의 신경전도 서럽다. 취향에 따라 입맛을 다시는 고객을 위해 달리는 그들의 현실은 치킨 튀긴 기름처럼 뜨겁고 떡볶이를 버무린 고추장처럼 맵다. 가만히 앉아 젓가락 한 개도 준비하지 않는 갖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동차 사이를 무모하게 달린다. 사람들이 휘적거리는 젓가락 놀림에 그들의 노곤한 하루가 울고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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