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줄 아는 용기
질 줄 아는 용기
  • 김성곤
  • 승인 2017.11.0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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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곤 교육학 박사

 ‘조금만, 조금만 더’는 어린이 책을 많이 출판하는 시공주니어에서 펴낸 책으로 권장연령은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다. 저자 존 레이놀즈 가디너는 미국에서 우주왕복선 개발의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로 로키 산 전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10살짜리 소년 윌리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아버지와 함께 감자농장을 일구며 번개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 너무 가난해서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윌리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윌리는 할아버지가 세금을 내지 않았고 밀린 세금을 내지 않으면 농장을 뺏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농장을 지키고 할아버지를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 상금 500달러가 걸린 눈썰매 경주대회에 나간다. 이제껏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전설적인 인디언 ‘걸음거인’과 겨뤄 이겨야 한다. 그러나 윌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윌리의 대학등록금으로 아껴 둔 50달러를 썰매대회 참가비로 내고, 윌리는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얼음 거인을 만난 윌리는 “아저씨가 얼마나 이기고 싶어 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저도 이기고 싶어요. 제가 이기지 못하면 그 사람들이 농장을 가져갈 거예요. 할아버지는 간절히 원하면 해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난 해내겠어요. 당신을 꼭 이기고 말겠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결전의 날 사람들은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얼음 거인에게 모두 돈을 걸었다. 얼음 거인이 이길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까웠다. 그러나 윌리와 번개에게 건 돈은 단 일 센트도 없었다. 드디어 눈썰매 경주가 시작됐고, 윌리와 얼음 거인이 서로 1위를 뺏고 빼앗기며 목표지점에 도착할 무렵, 많은 사람들은 윌리가 저 멀리 중앙로 끝에서 모습을 나타내자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리고 얼음 거인이 바로 그 뒤에 오는 것을 보고 더욱 미친 듯이 환호했다.

 “힘내, 번개! 조금만 더!”라는 윌리의 말에 번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이제 결승선까지 3m 남았다. 그때 번개의 심장이 터졌다.

 번개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윌리를 뒤쫓아 오던 얼음 거인은 윌리의 옆에서 썰매를 멈췄다. 얼음 거인은 얼음장 같은 바람 속에 서서, 어린 도전자 윌리와 그의 팔 밑에 누워있는 번개를 내려다봤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얼음 거인에게 쏠렸다.

 그러나 얼음 거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 서 있었다. 마치 산처럼.

 얼음 거인은 썰매로 돌아가 총을 꺼냈다. 다른 선수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얼음 거인은 허공에 대고 총을 쏘며 “이 선을 넘는 사람은 누구든… 내가 쏘아 버리겠소.” 온 도시가 말없이 윌리를 지켜봤다. 윌리는 번개를 끌고 마지막 3m를 걸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끝이 난다.

 책을 다 읽은 후 진한 감동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농장을 구하기 위해 감자밭을 일구고 집을 지키는 윌리와 개 번개도 매우 훌륭했다. 또한 윌리를 응원했지만 결승선 3m 앞에서 번개가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자신은 패배하고 윌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 패배를 선택한 얼음 거인이란 인디언에게 경의를 느꼈다. 비열한 승리보다 아름다운 실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성취 지향적인 우리의 삶 속에서 나를 다그치지 말고 편안히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라깡은 “많은 이들이 타자의 욕구를 욕망한다”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를 내려놓는 용기를 가질 때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아들의 소원이 아닌 딸의 소원이 아닌, 타인의 소원이 아닌 나의 진정한 바람은 무엇일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우리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녀들의 성공이 내 성공과 맞물려 아이들을 닦달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온 행복을 문 앞에서 돌려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움인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끝없는 욕망을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1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글에서 나는 긴 감동을 받고 행복한 저녁을 맞는다. 질 줄 아는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저녁이다. 삶의 현장에서 때로 져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감사한 저녁이다. 내려놓음과 비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사랑의 온도를 높인다면 다가올 겨울이 마냥 황량하고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장차 다가올 마음이 따뜻한 겨울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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