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과학자, 예술가 등은 유대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유대인들은 선천적으로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타고난 두뇌보다 어릴 때부터 창의성 교육을 받으면서 우수한 인재로 성장한 쪽에 무게가 더 간다. 그런 교육의 바탕에는 두 권이 책이 버티고 있다.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만하면 잠자기 전에 토라를 낭송해 준다. 유대인 교육에 필수적인 교재인 탈무드는 실제 생활에서 지혜를 구하는 힘을 던져준다. 유대 민족을 ‘책의 민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 민족은 5천년 역사에서 여섯 번에 걸친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위기의 파고가 삼킬 듯이 덤벼들어도 유대 민족은 토라와 탈무드에서 얻은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더 이상 부활할 건덕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유대민족은 다른 나라에서 시편을 읊조리며 회복을 꿈꿨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토라의 구절이 그들을 붙잡았다. 유대 민족은 구절을 반복해 암송하면서 내면의 힘을 회복하고 실제 회복을 이뤘다. 토라와 탈무드 암송과 토론으로 대표되는 유대인의 교육은 지금도 힘을 발휘한다.
유대인이 토라와 탈무드에서 체득한 신념이 무엇인지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 움직인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주장과 달리 유대인은 신에게 순종하며 의지할 수 있고, 신에게 불순종하며 배반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런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바로 역사다. 유대인들은 처참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신에 불순종한 자신들을 들여다봤다. 순종의 길을 걸을 땐 회복의 노래를 불렀다. 신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줬지만 유대인들은 순종을 택할 때 번영의 길을 걸었고 불순종할 때 가시밭길을 걸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마음 판에 새기고 있다.
우리 민족도 유대인 못지않게 강하다. 5천년 동안 숱한 외침을 받아도 살아남았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거치면서 본능적으로 생존의 교훈을 체득했다. 생존은 가장 고귀한 명제다. 우리 민족이 꿋꿋하게 생존의 길을 걸었던 데는 강대국 틈새에서 익힌 생존법칙이 큰 힘이 됐다. 사대주의는 자기를 방어하는 좋은 방어 수단이다. 조선은 중국에 기대면서 생존의 강에서 헤엄을 칠 수 있었다. 사대주의는 작은 존재인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올려줘 무력에 굴복당하고 있다는 걸 숨기는 자기 기만적 심리 장치이다. 유대 민족은 강대국에 맞서 싸우다 지배국에 잡혀가는 수모를 겪었다. 유대 민족은 정공법을 택하는 바람에 나라가 깡그리 날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다른 나라로 잡혀가는 긴 포로 행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유대인이 긴 생존을 이어온 것에 두 권의 책이 주는 교훈이 절대적인 힘이 됐다면, 우리 민족은 사대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심리적 바탕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생존의 거대한 굴레를 쓰고 있다.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헛웃음만 짓고 있기에는 아무래도 무책임해 보인다. 또다시 생존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큰 나라를 앞세워 넘을 것인지, 유대인처럼 민족의 저력을 보이며 극복할 것인지 대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듯하다.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책이 있냐고 물으면 누구나 “그런 책은 없다”고 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