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결정, 현 정부가 사죄한다면…
전 정부 결정, 현 정부가 사죄한다면…
  • 권우상
  • 승인 2017.08.2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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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만기 출소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여당 지도부의 인식을 놓고 법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명백한 증거와 확정판결을 외면한 채 정치적 시각으로 사법기관 판단을 부정하는 것은 “법치주의라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2년간 복역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5명도 3억 원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은 증거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전 총리의 만기 출소와 관련해 “수사도, 재판도 잘못됐다”고 하는 등 여당 지도부가 형 집행을 마친 지금 억울한 옥살이라고 비판하자, 법조계에선 단순히 불만 표시를 넘어 사법체계의 문제로 삼는 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했다. 재경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군사정권 시절의 정치재판도 아니고, 증거에 입각해 이뤄진 대법원 확정판결과 집행까지 마친 사안을 정치 쟁점화해 사법부를 정쟁의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은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 판사는 “검사나 피고인이 법정이라는 ‘링’ 위에서 입증에 주력해야지, 판결이 선고된 뒤에 대국민에게 불만을 표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국정농단 등 중요한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향후 재판에 불복하는 선례가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억울한 옥살이 주장이 나오자 통진당 당원들도 통진당 해산 무효를 외치며 이석기 석방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삼권(입법, 사법, 행정)이 분립된 민주국가에서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무기력해지고 정치적 판단에 작용할 우려가 있어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면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할 책임이 있는가? 지난 1997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인권단체가 원주민에 가해진 잔혹행위에 국가가 사죄하라고 했다. 하지만 ‘존 하워드’ 당시 총리는 사죄에 반대했다. 전 정부가 한 일을 왜 현 정부가 사죄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답하려 집단 책임과 공동체의 요구라는 다소 어려운 질문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 공동체에 의해서거나 또는 정치공동체 이름으로 부당함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해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정치인)이나 그것을 옹호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 행위로서 공식 사죄는 과거의 속죄를 표시하는 수단인 손해배상이나 금전 지원도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희생자와 그 가족이나 후손에게 미치는 부당 행위의 후유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전(前) 정부의 행위에 대한 배상이나 금전 지원이 정당한지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더러는 공개 사죄나 배상을 하려는 일이 과거의 오랜 증오를 다시 꺼내어 불을 지피거나 역사적 적개심을 강화하고 피해 의식을 공고히 하며, 분노를 키우는 등 득(得)보다 실(失)을 더 많이 낳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공개 사죄나 금전 배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우려한다. 과거 정부가 결정한 판결 등 행위에 대한 사죄나 보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또 다른 논리는 상황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원칙적 논리로 과거 정부에서 한 판결을 잘못했다고 현재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민에게 과거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보상금을 물리는 행위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과거 정부에 대한 잘못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당시의 법을 현재 정부의 잣대에 적용해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지난 정부의 행위에 대해 현 정부가 사죄나 배상을 물려서는 안 된다. 만약 과거 정부의 행위를 현재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한다면 현재 정부의 행위도 세월이 흘러 훗날에 미래 정부가 파결에 대한 사죄나 보상을 해야 하고 만일 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금전적인 보상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므로 국민이 떠안게 된다. 만일 현재 정부가 과거 정부의 결정(판결)과 관련해 경제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정권(정부)이 바뀔 때마다 사죄와 금전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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