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7:52 (토)
‘전설의 땅’은 지금 있는가
‘전설의 땅’은 지금 있는가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08.24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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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여전히 전설의 땅을 꿈꾼다 인간의 욕망과 시대정신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고 믿는다
▲ 류한열 편집국장
 사람들은 긴 역사를 헤쳐오면서 ‘전설의 땅’을 만들어 왔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는 전설이 돼 인간의 주위에 머문다. 실재하든 실재하지 않든 믿음의 흐름은 전설의 땅을 단단하게 하고 그 허구 속에서 실재를 찾게 만들었다. 요즘 이런 전설의 땅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도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꿈꾸는 상상력은 유효하다. 정복자의 탐욕이든 보통 사람의 현실 일탈이든 엘도라도가 없으면 우리 삶에서 돌아갈 고향 한 곳을 잃었다고 보면 된다.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져간 전설의 땅 가운데서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전설의 꾸러미를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요즘 사람에 대한 전설은 무참히 깨지고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준 품격이 날개 없이 추락할 때 전설의 구름은 걷힌다. 먼저 교육계에서 사라져 가는 전설의 땅. 예부터 교육자는 크게 존경을 받았다. 사람을 가르쳐서 사람답게 만드는 그 사람이 존경을 받은 건 당연하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말라’고 해서 제자들은 스승을 임금과 부모처럼 대했다. 그런 전설은 아직 사람의 입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선생의 영역은 고귀하다고 믿는 구석은 있다. 이런 믿음까지 깡그리 뺏어 가는 선생님들은 전설을 깨는 ‘폭군’이라 봐도 된다.

 창원에서 근무하는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교육계에 한평생 머물면서 작은 전설을 만들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오랜 세월 제자를 가르쳐 존경을 받고, 많은 후배 선생님에게 모범이 됐을 만한 선배 선생님이다. 이 교장 선생님의 전설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이 교장이 주위에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 내용을 간략히 서술하면 이렇다. 교내에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교무부장과 틈틈이 골프채를 들었다. 드라이브와 아이언을 들고 휘두르면서 ‘나이스’를 외칠 때 학생들은 ‘딱딱’ 소리에 귀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직원들에게 언어폭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여러 큰 상처를 입혔다. 거기다 학생을 차별해 학부모들에게 거친 항의를 받았다. 공금과 사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자기 호주머니를 채웠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교육계의 최고 어른인 교장 선생님의 전설을 깬 이 교장이 정년을 맞아 오늘 학교를 떠난다.

 교장 선생님의 나쁜 행위를 신문에 내주기를 바라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취재를 하다 그만뒀다. 비록 전설은 사라졌지만 전설의 주인공까지 무대에서 밀어내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를 생각하기 이전에 교육자로서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는 그분에게 마음이 쓰였다. 40년 가까이 걸어온 교육자의 길 끝에 만나는 파국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설의 땅을 무참히 짓밟는 꼴이다. 단체나 개인 영역할 것 없이 전설을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경남교육청은 지난 23일 교원징계위원회를 열고 성희롱 발언을 한 모 여고 교장을 해임 의결했다. 전설을 지키고 싶어도 주위에서 깨지는 전설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교장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성을 팔 수도 있다”는 발언을 고교 1학년 학생에게 했다. 이 말을 들었을 학생들의 참담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

 정치계에 ‘전설의 땅이 남아있을까’라는 의문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정치를 돌리는 힘은 현실에 너무 싶게 꽂혀 정치가 전설의 영역이 아니라 해도 맞는 말이다. 경남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는 격한 싸움터다. 내년 6ㆍ13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는 꺼진 정치력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진보는 장기집권을 위한 세 확장을 내세우고 있다. 벌써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로 오르내리는 인물이 부지기수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만든 거대한 정치 동력을 발판으로 특히 경남에서 시장ㆍ군수를 많이 당선시키려 한다. 경남 여러 지역을 잡으면 향후 한국 정치의 큰 그림에서 오랫동안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 창원 4개 지역위원장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특정 진영을 묻지 않고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고 나섰다. 뻔한 논리다.

 자유한국당은 영남권에서 엎지르진 물바가지를 들고 지역 주민들한테 내밀 태세다. 그래도 마시던 물이 더 시원하다는 논리다. 착한 도민이 물바가지를 받아 마시면 될 텐데 행여 그 물바가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면 어쩔까 마음을 졸인다. 한국당이 예전에 만든 전설의 땅이 여전히 남아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 땅의 윤곽이 머지않아 드러난다. 얼마나 애가 쓰일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전설의 땅을 꿈꾼다. 인간의 욕망과 시대정신이 전설의 땅 구석구석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나 정치계가 믿음을 주고 그래서 두 영역이 만든 전설의 땅에 마음을 둘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다. 제발 실낱같은 믿음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순진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몰아가면 안 된다. 전설의 땅이 사라지면 현실은 너무 갑갑하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그리움을 뿜어내듯, 사람들은 전설의 땅을 바라며 자신을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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