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할 책임이 있는가?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 공동체에 의해서거나 또는 정치공동체 이름으로 부당함이나 억압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나 억압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해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옹호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 행위로서 공식 사죄는 과거의 속죄를 표시하는 수단인 손해 배상이나 금전 지원도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희생자와 그 후손에게 미치는 부당행위의 후유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배상이나 금전 지원이 정당한지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더러는 공개 사죄나 배상을 하려는 일이 과거의 오랜 증오를 다시 꺼내 불을 지피거나 역사적 적개심을 강화하고 피해 의식을 공고히 하며 분노를 키우는 등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세대가 저지른 부당 행위에 대한 사죄나 보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또 다른 논리를 보자. 상황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원칙적 논리로 과거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세대가 사죄나 보상을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죄나 보상은 결국 부당행위를 어느 정도 책임지는 것이며, 내가 하지 않은 행위는 사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사죄나 보상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존 하워도’ 총리도 “오스트레일리아의 현세대가 앞선 세대의 행위를 공식 사죄하고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하면서 원주민에 대한 공식사죄를 거부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사죄나 배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국민에게 과거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보상금을 물리는 행위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면서 오늘날의 국민에게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사죄나 배상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과거 정부의 행위를 현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한다면 현 정부의 행위도 세월이 흘러 미래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면서 특히 금전적인 보상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므로 국민이 떠안게 된다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원주민에게 가해진 잔혹 행위에 대해 공식 사죄를 반대한 것처럼 아베 총리가 과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억압이나 학살 등 조선인에게 가해진 잔혹한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사죄하기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면 아베 총리도 ‘과거의 정부가 저지른 일을 왜 지금 정부가 사죄하고 금전 보상을 하느냐’ 하는 암묵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최근 아베의 지지도가 급락한 것은 가케학원(加計學園) 부정 의혹과 이 학원이 운영하는 보육시설 명예원장인 아베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 관련 의혹이 불거지자 아베의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박정희 정부와 위안부에 대해 합의를 해놓고 지금 정부가 바뀌었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정직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정직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위안부 문제는 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