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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얻게 해준 소통
삶의 지혜를 얻게 해준 소통
  • 차은숙
  • 승인 2017.07.23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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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은숙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2013년에 입사해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나간 그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미숙하고 어색하게 행동했지만, 차차 어르신들과의 유대에 적응해가며 이제는 많은 경험을 가진 능숙한 보훈섬김이가 돼가고 있다. 어르신들을 집에서 처음 뵙던 날, 어르신들의 집에서 청소하고 반찬을 하던 일, 무더운 여름에도 어르신들은 더위를 그다지 타지도 않지만 전기세가 아까워 선풍기도 틀지 않아 땀 뻘뻘 흘리며 일하던 것들이 모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는 정말 값진 경험들이다.

 그렇지만 5년 동안 보훈섬김이로 일을 하면서 나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것은 어르신들과의 어색하지만 즐거운 소통들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는 쉽게 극복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나에게 제법 익숙한 일이 됐다. 처음에는 공통된 주제가 없어서 대화보다는 정적의 시간이 많았고 그 어색한 순간들을 피하기 위해 바쁜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과의 대화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는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아닌 ‘경청’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어르신들과의 소통은 훨씬 잘됐다. 또한 그분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가장 중요했기에, 내가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게는 충분히 즐거운 대화가 됨을 깨달았다. 소통이 편해지고 나서부터는 청소와 요리, 심부름 등을 해줄 때도 내 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을 보이며 같이 공감을 해 주면 어르신들은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하신다.

 어떤 어르신과는 반찬을 만들면서 이 반찬이 맛있다. 저 반찬이 맛있다. 얘기를 하면서 새로운 오이 볶음과 해초 무침 등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방식의 어르신만의 독특한 조리법을 배우고 그 조리법으로 새로운 맛도 내고 했다.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맛있다고 하면 어르신의 어깨에는 금방 잔뜩 힘이 실리고 목소리는 커진다.

 어떤 어르신께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다른 가게보다 값싸고 맛있는 과일을 파는 가게를 가르쳐 주신다. 싸고 맛있다고 하면 그 어르신도 역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커진다.

 어떤 어르신은 혼자 먹는 밥이 너무 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같이 먹자고 하시는 분도 계신다. 당신이 손수 차려서 당신 혼자 먹는 밥이 제일 먹기 싫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같이 드실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반찬 한두 가지 만들어 가서 어르신과 같이 밥을 먹는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어르신께서는 계속 이야기를 하신다. 자주 오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한 이야기며, 먼저 간 할머니가 야속하다는 이야기며, 옆집 할아버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등… 너무 흥분을 하셔서 입속의 밥알이 튀어나오는 줄도 모르시고 계속하신다. 나는 같이 자식욕도 하고 먼저 간 할머니가 너무 야속하다고 이야기하고 옆집 할아버지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 등을 목소리를 키우면서 동조를 해 드리면 어르신은 한풀 누그러져 “다 사정이 있으니까!” 하시면서 나보고 이해를 하라고 다독이신다. 그러고는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고 하시면서 소화가 안 된다고 가스활명수를 한 병 드신다. 혼자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에게 그렇게라도 풀고 나면 시원해지는 것이다.

 보훈섬김이의 일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처음의 나의 생각은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뀌었다. 집을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신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씩 오는 자녀분들은 오면 청소를 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 것도 해주지 않을 거면 왜 오냐고? 하는 자녀도 있다. 물론 그런 도움도 필요하지만 어르신들은 ‘혼자’라는 것보다 ‘우리 같이’를 더 원하신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어르신들께 베푼 것 보다 깨닫고 얻은 것이 더 많다. 보훈섬김이를 자식처럼 생각해주시고 위해 주시는 어르신들로부터 나는 하늘나라에 가신 내 부모님의 온정을 느꼈다. 이 온정을 끝까지 간직해 잊지 않고 나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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