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1:27 (토)
사람이 내리는 판단의 불합리성
사람이 내리는 판단의 불합리성
  • 이유갑
  • 승인 2017.07.19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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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 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선비의 중요하고 필수적인 기준으로 생각해 왔다. `신(身)`은 건강한 신체와 용모 단정함을 의미하고, `언(言)`과 `서(書)`는 말과 글에 조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함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의 `판(判)`은 판단의 정확성을 일컫는다. 이처럼 판단력은 비중이 매우 높은 덕목이다.

 인간의 판단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사회심리학에서 그동안 얻어진 많은 연구의 결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아주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내면의 생각이나 경험에 따라서 꼭 같은 현상도 각자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인상 형성에 관한 실험이 좋은 사례이다. 한 사람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글에서 전반부의 단락에서는 이 사람의 외향적이고 활달한 행동 묘사를 하고, 후반부의 단락에서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행동 묘사를 했다. 이 글을 읽은 대다수의 사람들(90% 정도)은 이 사람의 성격은 외향적인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는 같은 내용의 글을 순서만 바꿔 봤다. 앞의 단락에서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행동 묘사를 하고, 뒤의 단락에서는 외향적이고 활달한 행동 묘사를 했더니 역시 90% 정도의 사람들이 이 사람의 성격은 내성적인 것으로 판단을 내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앞에 제시된 단서나 자극이 뒤에 제시된 것들보다 타인에 대한 인상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초두효과(初頭效果)이다. 또 다른 예로서 어떤 사람에게 신체적인 매력이 있거나 뛰어난 하나의 특성이 있으면, 그 사람의 다른 특성도 다 좋게 보는 후광효과(後光效果)가 있다.

 매력적인 연예인이나 운동을 잘하는 선수를 보면서 성격도 좋을 것 같고, 머리도 뛰어날 것 같고, 집안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종의 판단 오류이다.

 이런 판단의 오류에는 좀 더 심각한 고민이 담겨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처음에 내린 자신의 판단이나, 타인에 대해 처음에 가진 인상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판단이나 인상에 부합되는 정보는 `그 봐, 내가 맞지` 하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맞지 않거나 애매한 정보는 모르는 척 은근슬쩍 밀어내거나 무시하는 속성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들에서 입증돼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다보면 처음에 내린 판단이나 처음에 가졌던 인상은 자꾸 강화되고, 점차 고정관념으로 자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물론 오래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별로로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면서 그 사람을 진짜로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이 내리는 판단은 불합리하고 부정확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공기업을 중심으로 신입사원의 채용과정에서 출신학교, 학점, 스펙 등을 보지 않고 직무 적합도를 중요한 기준으로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도입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접하는 정보나 단서에 의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작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 방식을 좀 더 세밀하게 보완해서 학력이나 스펙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실력이나 잠재적인 능력에 의해서 선발하는 제도가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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