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2:22 (화)
비 오는 날의 등교 풍경
비 오는 날의 등교 풍경
  • 김금옥
  • 승인 2017.04.12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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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진해냉천중학교 교장
 밤새 빗줄기가 바람과 함께 창을 두들겨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일찍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니 평소보다 도착시간이 빨랐다. 현관 입구에 우산 담을 통을 가지런히 가져다 놓고, 습기 머금은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아 아이들의 발이 젖지 않게 했다. 현관 입구의 물기를 밀대로 제거하고 나서 높직한 현관 입구에서 내려다보니, 비 오는 날의 등교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부산한 아침 등굣길, 정문에는 벌써 출근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학교 주변으로 아파트 신축 공사장이 여럿 있어 등ㆍ하굣길이 항상 마음이 쓰인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 잡은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는 학부모형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요청한 적이 없는데 자발적으로 나온 학부모들이라고 들었다.) 초등학교와 같은 건널목을 사용하는 관계로 우리 학생들도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수신호에 따라 안전하게 길을 건너고 있었다. 우산 없이 차에서 내린 한 학생에게 우산을 씌운 채 현관 입구까지 데려다준 선생님은 다시 빗속으로 돌아갔다. 우산 살대가 휘어져 접어지지 않는 여학생의 우산을 받아 물을 털어내고 구석에 세워뒀다.

 비바람 속에서도 다들 무사히 도착했구나! 안도하며 입구를 정리하고 계단을 내려섰다. 생태체험 텃밭에는 어제 심어놓은 모종들이 빗물에 반쯤 잠겨있었다. 창고에서 호미를 꺼내 물길을 만들어주고 있으려니, 어젯밤 TV에서 본 한 얼굴이 떠올랐다. ‘굿네이버스’ 주관으로 진행하는 지구촌 어린이 돕기 프로그램에서였다.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땅에서 실낱같은 나무를 베어와 도넛을 만들어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던 소녀! 하쟈디야는 부모를 잃고 3살, 6살배기를 비롯한 5명 동생의 생계를 부양하는 소녀가장이었다. 이제 막 봉오리를 키우는 꽃처럼 신비하고 싱싱한 13살의 소녀의 모습은 한순간,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비추니 시든 꽃 같았다.

 절대로 삶의 양지로 옮겨 올 수 없을 것 같은 고뇌가 무겁게 어린 소녀를 누르고 있었다. 이어서 큰 눈망울에 두려움만 그렁그렁 담긴 얼굴 몇이 지나갔다. ‘서방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을 지닌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시장에서 일어났던 테러의 주범은 놀랍게도 10살 혹은 12살짜리 소녀들이었다. 그들은 냄비에 폭탄을 담아서 터뜨렸다고 했다. 막 입학한 본교 학생들의 나이가 하쟈디야나 테러 폭탄을 사용한 소녀들과 비슷하다. 코끝이 찡했다.

 굵은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실내로 들어서니, 교감 선생님이 한 아이를 업어 서둘러 보건실로 옮기고 있었다. 어쩌다가 발목이 접질렸다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동행하던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순간,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교육이란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넓히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등굣길이 안전하도록 도와주는 학부모를 바라보며 학생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보호받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우산을 씌워 현관까지 바래다주던 선생님은 봄비 맞으면 감기 드니 우산을 챙기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발목을 접지른 학생이 보건실로 가는 길에 느꼈을 선생님들에 대한 든든한 신뢰는 또 어떤가. 비가 땅을 적시듯, 교육은 인간간의 선의와 존경과 신뢰에 촉촉하게 젖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 이 비를 몰고 온 구름과 바람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미세먼지를 쓸어가고, 그리고 저 멀리 하쟈디야가 사는 곳에도 촉촉하게 내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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