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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연소 인물ㆍ최초 사건들
조선 최연소 인물ㆍ최초 사건들
  • 송종복
  • 승인 2017.03.13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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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조선의 최연소 정치인과 최초로 일어난 사건들을 파헤쳐보니 요즘에 비하면 나이가 적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과거시험에 급제한 최연소는 15세의 이건창으로 1866년(고종3) 강화도 별시문과에 합격했다. 그는 한 말 최후의 암행어사로서 부패한 관리들을 징벌하는데 제 일인자였다. 따라서 그의 불망비가 3개나 있다. 송파구 송파초등학교 옆 공원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강화도 사기리에 수의사영세불망비(繡衣使永世不忘碑), 경기도 하남시 감북로 39번지에 세워져 있다.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는 1584년(선조17)에 17세의 박호(밀양박씨)이며, 임진왜란 때 28세에 전사했다. 무과에 장원급제한 자는 세조(1457) 때 17세의 남이(의령남씨)이다. 그는 병조판서에 최연소로 역임한 자(27세)로서 권람(계유정란의 1등 공신)의 사위이다. 뒤에 유자광의 모함으로 주살됐다. 또한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된 자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로서 2세에 책봉됐고, 또 10세에 결혼한 최연소 기록도 있다. 반면 뒤주 속에 갇혀 죽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최연소로 영의정이 된 인물은 28세의 이준이다. 그는 세종대왕의 손자(임영대군의 아들)이다. 홍문관의 대제학에 31세의 이덕형(한음)이 최연소로 역임했다.

 조선 시대 최초로 정승이 된 인물은 배극렴이다. 그는 태조(이성계)보다 10살이 많으며, 조선개국 일등공신의 훈작을 받았다. 태조부터 고종까지(1395~1905) 한성부판윤(현 서울시장)이 모두 1천370명이나 바뀌었다. 그중 최초(1395)로 한성부 판윤에 임명받은 자는 성석린이다. 조선 시대에 일어난 최초의 기독교 신자는 이성하이다. 그는 평북 의주 출신으로, 고종 11년(1874)에 영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최초의 천주교 세례교인은 이승훈이다. 그는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과거에도 급제하지 않고 세조(1467) 때 영의정에 올라 2대까지 집권한 인물은 황수신이다. 그는 황희 정승의 아들이며, 조상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숙주는 일본 사정을 최초로 소개한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 이 책은 일본 방문을 한 후 일본 내막을 상세하게 적은 책이다. 족보는 고려 중엽에 등장했으나, 현존하는 최초의 족보는 성종 7년(1476)에 간행한 <안동권씨세보>이다.

 문과에 가장 많이 합격자를 배출한 지역은 한성(서울)으로 1천620명이다. 2위는 평북 정주(定州)로 178명이다. 3위는 경북 안동(安東)으로 94명. 4위는 평남 평양(平壤)으로 65명이다. 선비들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이이(율곡)이며, 과거시험에 9번이나 장원급제한 수재이다.

 광복 후 정치인으로 김영삼(전 대통령)은 26세에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당선된 후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9선이나 당선됐다. 2010년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는 21세의 최규원이다. 그는 2008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1학기 다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있으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16년에 제51회 공인회계사 시험에 천안의 조만석이 18세에 합격했다. 이로 보면 조선 시대는 주로 15세ㆍ17세에 급제하는데, 광복 후는 18세ㆍ21세가 최연소이다. 조선 시대 이준은 28세 때 영의정(현 국무총리)에 부임했는데, 광복 후 최연소인 국무총리는 45세의 김종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조셉 카빌라는 35세의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도 35세에 대통령에 당선, 미국의 존 F. 케네디는 46세에 당선됐다. 이러고 보면 광복 후의 우리의 정치인은 고령자만 판을 치고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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