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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 ‘도루목’의 진위를 살펴보니
말짱 ‘도루목’의 진위를 살펴보니
  • 송종복
  • 승인 2016.11.21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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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도루목(묵)을 일명 목어(木魚), 은어(銀魚), 환목어(還木魚), 환맥어(還麥魚), 도로목어(都路木魚), 도루무기, 도로목, 돌목어라 한다. 요즘 강원도 속초에서는 지난 18일부터 오는 27일까지 ‘도루목 축제’를 하고 있다. 한 번 가 볼만 한 곳이다. 원래 도루목이란 ‘말짱 환이다’라는 것이다. 즉,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을 쓴다. ‘말짱 헛일’이라고도 한다. 이 ‘말짱 도루묵’이란 말은 조선후기 이긍익이 높은 관직에 올랐다가 삭탈당해 낙향한 허목을 ‘도루묵’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속초의 ‘도로목 축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의주로 피난 갔다. 피난길에서 시장기를 느껴 밥상을 받았는데,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그 이름을 물었다. 신하가 ‘목어(木魚)’라고 했더니, 임금은 즉석에서 이런 맛있는 생선 이름을 ‘은어(銀魚)’라고 하사(下賜)했다. 그 후 궁궐로 돌아온 선조는 피난길에서 먹었던 ‘은어’ 생각이 나서, 다시 그 고기를 요리해 오도록 해 먹어보니, 그 맛이 예전과는 영 달랐다. 이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임금은 그 고기 이름을 ‘도로 목어’(먼저대로, 본래대로)라고 부르도록 했다. 이로써 실속이 없는 것을 ‘도로목(묵)’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한 도루묵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전국팔도 음식평론서인 <도문대작>에 나온다. 즉,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였는데 전(前)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쳤다’고 한다. 이때 전 왕조란 선조가 아니라 고려 때라고 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도 ‘물고기의 배가 하얀 것이 마치 운모 가루와 같아 현지 사람들이 은어라고 부른다’고 했고, 이식의 시에 ‘임금님이 왕년에 난리를 피해 황량한(동해안) 해변에서 고난을 겪다가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나 이는 하사한 명칭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면 동해근처에 피난 온 왕은 누구일까. 고려와 조선의 천년을 통해 수도를 버리고 피난 갔던 왕은 5명이다. 즉, △11세기 고려 현종이 거란족의 침입을 피해 전남 나주로 피난, △13세기 고려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 △14세기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경북 안동으로 피난, △16세기 말 선조는 임란 때 왜적을 피해 의주로 피난, △17세기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충남 공주로 피난, 또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난 갔다. 그러니 고려 이후 도루묵이 잡히는 동해안으로 피난 간 임금은 한 명도 없다.

 또한 일설에 ‘도루묵’이란 고기는 정조 때 이의봉의 <고금석림>과 조선 말 조재삼의 <송남잡지>에도 전하고 있다. 또 은어는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함경도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임원십육지>에는 강원도에서 잡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실록>에는 동해안의 특산물로써 조정에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왜 이 은어가 ‘도루묵’이 됐는가. 처음은 좋았지만 끝에 가서는 형편없는 판국이 됐다는 의미이다. 힘들게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이룬 정권이 요즘은 배신당하고 있다. 이같이 애쓴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를 빗대어 ‘말짱 환이다’,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한다. 혹 현 정권이 ‘말짱 도루목’은 되지 않을까, 온 국민은 노심초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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