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기다리며
영웅을 기다리며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11.16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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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위원
 지난 13일 경남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사장 이병열)는 창원성산 아트홀 대극장에서 ‘베토벤, 영웅을 기다리며’라는 부제로 ‘2016 관현악과 함께하는 클래식 콘서트’를 열었다.

 지휘자 강만호는 “요즘 너무도 어려운 시기다. 이번 콘서트는 조용히 하고 싶어 홍보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마주하니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시대의 아픔을 숨죽이지 않고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를 함께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장이었다.

 음악과 정치.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100만 명의 시민들의 분노와 함성으로 들끓었다. 지난 1987년 6ㆍ10항쟁 때에 버금가는 규모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ㆍ미선양 추모집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11월 12일 또 다른 역사를 썼다. 역대 최대로 꼽히는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집회에 모인 70만 명(주최 측 추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100만 명이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약 5천167만 명의 2%가 한날한시에 한곳에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부산, 광주, 대구, 제주 등 지방 대ㆍ소도시와 해외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국정을 공식적인 조직이 아닌 사조직이 운영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삼류 정치하는 사람과 일류 음악을 하는 분들의 역할을 비교해 보았다. 국정의 책임자인 지휘자는 청와대,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국가의 세비와 녹을 먹고 사는 공직자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국가를 위해 수많은 연습과 조율로 국민들을 신나게 해주는 것이 기본 아닌가.

 단원들 중에 누가 자기 역할(음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단원들끼리도 알 것이고 국정 책임지인 지휘자한데 말할 수도 있는데 안 하고 못하면서 행하는 비정상적인 음악을 국민들은 듣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니 참으로 불쌍하다. 시간만 가면 제 날짜에 맞춰 봉급도 받고 권력도 행사한다. 단연 인기 있는 직종이고 이 땅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업인데.

 국정의 지휘자는 당연히 공직자들인 단원들과 상의해서 관객인 국민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려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런데 관객한데 지휘자의 권한까지 넘겨 단원들을 좌지우지하게 하고, 영혼 없는 지휘자로 자리만 차지했으니 관객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일을 어찌할꼬.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 공직자와 국민을 대변한다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말로만 떠들지 말고 자주 음악회에 와서 어떻게 아름다운 화음이 들리고 관객들이 환호하는지를 보고 듣고 배우고 익혀 제대로 된 문화 창달을 해줬으면 좋겠다.

 영웅 교향곡은 베토벤의 스타일이 정립된 최초 작품으로 꼽힌다. 태어난 이상 세상과 함께해야야 하는 인간, 죽음을 넘나드는 투쟁, 그리고 승리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그는 장대한 50여 분짜리 교향곡 안에서 그렸다. 이 음악의 영웅은 더 이상 나폴레옹이 아니고 관객이고 일반 시민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절망하고 싸우고 승리하는 모든 사람의 행동에 영웅의 정신을 불어 넣었다.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던 베토벤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지난 1789년 일어난 프랑스의 혁명에서는 코르시카 섬 출신의 포병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이 반란을 평정하고 국내 최고 사령관이 됐다.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자유의 정신에 불타있던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빈에 주재하고 있던 프랑스 대사와 대사관의 비서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루돌프 크로이쩌로부터 프랑스에 자유와 질서를 가져온 나폴레옹의 업적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플라톤의 ‘공화국’을 숙독한 바 있었던 베토벤은 이 시대의 영웅의 자태를 보여준 나폴레옹을 자신의 작품으로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해 33세 때인 지난 1803년 여름 이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해 1804년 봄에 완성시켰다. 스코어의 표지에는 ‘보나파르트’라고 썼으며 밑에 자신의 이름 ‘루비트비히 반 베토벤’이라 적어 이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할 무렵, 나폴레옹이 황제가 됐다는 소식이 빈에 퍼졌다.

 이 소식에 분개한 베토벤은 그 사본의 표지를 찢어 버렸다고 한다. “저 사나이도 역시 속된 사람이었어. 그 역시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누구보다도 심한 폭군이 될 것이야.”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이후 다시는 나폴레옹에 대해 언급도 안 했다는 그는 2년 뒤 이 곡을 출판하면서 ‘한 사람의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 작곡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17년 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보도를 듣고 비로소 “나는 그의 결말에 어울리는 적절한 곡을 써 뒀다”라고 했다는 베토벤. 이는 이 작품의 제2악장에 있는 ‘장송 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음악이 지닌 가치와 우리 삶과 국가에 미치는 아름답고 긍정적인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자주 음악을 듣고 느껴야 한다. 나는 역사와 민중의 영혼을 존중하는 클래식 음악이 영원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따뜻한 사랑도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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