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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는 인간의 희망
주남저수지는 인간의 희망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11.02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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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위원
 낙동강의 선물, 지고지순함과 태고의 신비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주남저수지에서 맞이하는 늦가을 찬바람은 영혼까지 떨리게 하지만 상상 이상의 고혹적인 세상이다.

 신기한 전설이 서려있는 백월산 자락에 펼쳐진 주남저수지(4백3만㎡)는 동판저수지(3백99만㎡), 산남저수지(96만㎡)와 함께 총 8백98만㎡에 달한다. 약 6천여 년 전 경북 고령일대까지 도달하던 바닷물 수위가 낮아지면서 낙동강은 주변 지천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는 길목이 됐다. 이 과정에서 주남저수지 일대처럼 바닥이 낮은 곳은 낙동강의 범람한 물이 그대로 머물러 배후습지를 만들었다. 저습지인 주남저수지는 농민들에게 농업용수를, 어민들에게 풍부한 어족자원을 공급해주는 귀한 생명수의 보고다.

 주남저수지에는 람사르 문화관, 생태학습관, 탐조대, 주남환경스쿨 등이 있다. 람사르 문화관은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창원에서 열린 환경올림픽 제10차 람사르(Ramsar) 총회를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지구촌 습지생태의 보존과 람사르 글로벌 실천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과 전시를 하고 있고, 생태학습관은 주남저수지의 자연이야기와 함께 종합적인 습지생태 체험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주남저수지는 어떤 마음을 갖고 세상과 호흡하는지 궁금하다. 그냥 조용히 걸으면서 주남의 사계를 온전히 보고 느끼고 가슴에 담고 싶어 몇 번이고 주남저수지를 찾았다.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 주남저수지의 늦가을은 풍요로움의 가득한 수확의 계절이라기보다는 주남의 진정한 주인인 철새를 맞이하게 위해 분주하다. 수량을 조절해서 새들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하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탐방데크의 출입을 제한한다. 철새보호를 위해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으로 주민들은 보리를 파종만 하고 새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겨울의 주남은 하늘을 뒤덮은 가창오리 떼의 세상이다. 구름이 움직이고 산이 이동하는 가창 오리 떼의 위대한 비상은 신비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하나의 세상이 하늘로 웅비하고 그 세상의 아름다움이 땅으로 대이동을 하고 다시 현란한 군무로 수면 위를 너울거린다.

 주남저수지는 봄이 되면 곧 시베리아로 먼 길 떠나야 하는 겨울철새들의 비상 준비와 대지를 뚫고 새 생명이 싹트는 향기와 풀벌레들의 꿈틀거림이 분주한 시기다. 세상을 열어가는 힘찬 마력으로 갈대숲과 물가의 버드나무류에서 생명이 움트는 봄의 합창도 들을 수 있다.

 아름다운 황금들판,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갈대밭, 명상에 잠긴 잠자리들, 주남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물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가을은 누구든지 시인이 될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이 드넓은 수면과 색색의 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감동이다. 가을밤 주남의 거대한 가족들의 합창소리는 무딘 오감까지 황홀하게 자극하게 한다.

 주남저수지 주변에는 가로등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가로등보다 더 무서운 주변 주택과 아파트에서의 불빛, 곳곳에 들어서 있는 공장에서의 소음과 공해, 일상에서 주남저수지를 찾아 ‘내가 왔노라, 보았노라’를 남기려고 이곳저곳 카메라에서 터져 나오는 플레쉬도 멈춰야 한다. 이곳은 단체관광을 하는 곳이 아니다. 시끄러운 소리나 매스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 들려서도 안 될 것이다. 자동차, 경운기, 오토바이, 각종 농기계, 건설 장비들과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기 소리도 주남의 가족들에게는 방해가 된다. 인간은 신의 허락도 없이 대지를 함부로 훼손하고 물을 마음대로 오염시키고 자연을 향한 무지비한 공격을 더 이상 자행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차라는 것도 내 옷이라는 것도 내 권력이라는 것도 없다. 단지 세상과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세상은 나와 인연이 닿아서 한시적 관계를 맺다가 언젠가는 떠난다.

 아메리칸 인디언 시애틀 추장(1786∼1866)은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이는 ‘내 것’이 없을 때, 세상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따사로운 햇살과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온누리를 비쳐주고 봄비처럼 골고루 세상을 적셔주면서 새와 인간이 공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꿈속의 주남저수지가 아니다. 인간들이 떠난 자리를 고니들이 서로를 지켜주면서 한가로이 노니는 겨울마저도 함께한다.

 주남은 천연기념물의 보고다. 철새의 보금자리다. 생명을 잉태하고 살아가고 마감하는 인연의 파노라마가 있는 곳이다. 언제나 꿈을 만들고 있는 이곳 창원 주남저수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산업근대화의 메카에서 문화예술특별시로 거듭나고 있는 창원의 언저리에 광활한 늪지대가 있다. 자연사발물관이 있다. 창원 주남저수지와의 인연은 사랑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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