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49 (토)
진실, 그 존재의 가벼움
진실, 그 존재의 가벼움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10.20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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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요즘 웬만한 TV 드라마를 보면 불륜에 빠져든다. 불륜에 빠진 두 남녀의 만남에 당위성을 주고 결국 불륜 색깔까지 지우는 이야기 흐름에 마음이 침몰한다. 시청자들은 불륜의 대리만족을 얻든 더 농익은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이든 선택에 내몰린다. 불륜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최고 가치인 가정을 부수는 암과 같은 힘이 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덧칠돼 애잔한 색깔의 옷을 갈아입어도 불륜은 잘못된 사랑이다. 불륜은 사랑의 노선을 이탈한 폭주 열차와 같아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당사자들에겐 로맨스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얼굴 좀 알려진 사람들이 말을 툭 던져놓고 문제가 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무슨 노림수를 던져놓고 문제가 꼬이면 ‘아니면 말고’라며 고개를 더 쳐든다. 불륜을 저질러 들통나도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과 비슷하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군 복무 때 사회를 보면서 4성 장군의 배우자를 ‘아주머니’라 불러 13일간 영창을 갔다’고 말했다. 김제동 씨 발언을 장남 삼아 건넨 농담으로 보기는 힘들다. 1년 3개월 전의 발언을 최근 문제 삼은 여당 국회의원과 국회 국방위원장, 국방부장관도 저의를 깔았을 수 있다. 영창 발언 논란의 중심에 선 김제동 씨는 “검찰이 나오라면 나가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 한 시민단체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김제동 씨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군대 이야기를 부풀려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그는 당연히 이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말을 뱅뱅 돌리지 말고. 말을 던져놓고 문제가 되니까 “웃자고 하는 소리”라고 얼버무려서도 안 된다. 이는 안 걸리면 로맨스고 걸리면 불륜으로 보는 천박한 생각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펴낸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로 파문이 일고 있다. 여권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국기문란 행위를 했다고 각을 세우고 야권은 색깔론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지난 2007년 UN 북한 인권문제 규탄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북한의 의견을 먼저 들었는지 여부다. 이 회고록 논란의 진실은 놔두고 변죽만 울리며 시끄럽다. 당사자가 “당시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물러섰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북한 측에 의견을 먼저 물었는지에 대해 ‘예, 아니오’로 대답한 후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회고록을 두고 볼썽사나운 활용법이 난무한다. 추악한 굿판에 자칫 문재인 전 대표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여권이 불거진 문제를 두고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의 결재를 받아 기권했다”는 식으로 몰아붙여도 사실을 밝히고 대응해야 한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분명 다르기 때문에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두꺼운 회고록에 문재인 전 대표 관련 부분만 떼어 내 한심한 정쟁을 부추기는 꼴은 눈 뜨고 보기 힘들다. 극히 일부부만 도려내 이게 문제라고 외치면 많은 사람들이 혹한다. 균형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싸움을 구경하다 잘못 판단을 내리기 일쑤다. 그래도 문 전 대표는 북한 측에 물었는지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 대충 뭉개다 태풍의 눈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대권 선두 주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실은 변할 수 있다. 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다. 불륜은 미화될 수 있다. 간통법이 폐지된 후 많은 남녀가 줄타기 사랑을 즐긴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들켜도 처벌을 받지 않는데. 그렇다고 외도한 게 들통이 난 후에 남몰래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면 안 된다. 주위 사람이 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단죄는 없어도 양심의 법이 심판할 수 있다. 사실까지 덮으려는 행위는 다른 모든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 작태다.

 개그콘서트에서 웃음을 날리고 불륜 드라마에서 불륜을 치장해도 진실을 왜곡한 풍자나 사랑을 뒤집어쓴 불륜은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그콘서트에서 웃음을 한 방 날리기 위해 어떤 사실을 희화화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영창을 갔는지 안 갔는지는 최소한 밝혀야 한다. 금융시장에서 자신이 돈을 따면 투자가 되고 돈을 잃으면 투기가 된다. 투자로 보든 투기로 보든 돈이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그게 중요하다. 사실을 슬쩍 숨겨 놓고 다른 어떤 소리를 해도 그건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 냄새로 뒤덮여 있다. 미세먼지처럼 전국 어디라도 돌아다닌다. 그 의혹의 끝은 보이지 않고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까면 깔수록 더 의혹이 부풀려지는 모양새는 진실이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진실게임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뭐가 뭔지 모르고 어물쩍 넘어간다. TV 앞에 앉아 불륜인지 사랑인지 아리송해 하다 보면 그 드라마는 끝난다. 사실은 숨길수록 더 드러나기 마련인데 요즘은 이게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아 허탈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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