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8:17 (금)
아, 생존의 가벼움이여
아, 생존의 가벼움이여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8.25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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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원시인과 현대인의 차이는 일어나자마자 무얼 잡느냐에 달렸다. 원시인은 눈을 뜨면 사냥하려고 돌칼을 잡았고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을 잡는다. 원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돌칼을 들고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다니며 동물을 사냥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에 먹을 게 나오는지 하루 종일 손바닥에 그걸 올려놓고 노닥거린다. 현대인은 실제 생존의 문제가 아닌 시간 때우기로 스마트폰을 활용한다. 현대인은 원시인보다 생존 활동을 그렇게 길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경북지역은 사드 폭탄 돌리기로 연일 뜨겁다. 제3지역으로 거론되는 성주골프장 인근 김천 시민들이 궐기대회를 열었다. 김천 도로 곳곳에 ‘사드 배치 반대’ 펼침막이 즐비하다. 성주에 이어 김천이 들끓고 있고 그다음 지역도 비슷한 사태가 빚어질 공산이 크다. 김천이 반대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처지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를 국민 생존이라는 등식을 도입하면 배치 반대는 이해하기 힘든 굿판이다.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를 둘 수 없다.

 생존이 가볍게 내몰리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ㆍ잠대지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이번 시험발사 성공이 곧바로 실전 배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배치를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북한의 잠수함발사미사일 위협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미사일을 동해나 남해 먼바다에서 발사하면 사드로는 요격이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나저러나 사드 배치를 두고 백지화하자는 목소리가 사정거리 1천㎞까지 날아가고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지만 가공할 파괴 능력을 가진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난다면 기분 좋아할 일은 아니다. 북한에서 툭하면 미사일을 쏴 대는데 그 궤적을 구경만 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미사일이 나는 현재 상황은 실제 상황이다. 알려진 대로 김정은의 성격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가 자칫 오판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이 1인 독재로 비상식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북한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서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 생존이 위협당해도 우리는 사드를 배치할 장소조차 막혀있다. 생존이 이렇게까지 값어치 없이 취급받아도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국 출신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읽으면 죽음을 두고 벌이는 유쾌한 수다에 빨려든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면서 죽음을 아름다운 유혹쯤으로 몰아붙이는데 대해 동의할 수 없어 이 책을 읽고 나면 찜찜한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몰인정한 사람은 가족의 죽음을 놓고 시시덕거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은 두렵다. 자신의 생존에 무관심한 사람은 보통 한심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드는 있고 생존은 없다.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최적의 방어 수단인지 아닌지는 그다음 문제다.

 희망, 희망 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 미꾸라지 숙회라는 음식을 잡숴보셨는지요 (중략)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을 집어넣고 / 솥뚜껑을 덜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 그래 놓으면 /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 익어나오죠. (뒷부분 생략) 김연희 시인의 ‘미꾸라지 숙회’이다. 작은 솥에 불을 가하면 미꾸라지는 조금 차가운 두부살로 파고든다. 짧은 순간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데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허연 두부살에 박힌 미꾸라지는 짧은 순간 희망을 안고 그렇게 죽어 갔다.

 생존은 숭고한 영역이다. 생존을 뒷전으로 미루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솥 안에서 꾸물대는 미꾸라지와도 같다. 금방 죽을지도 모르고 머리를 두부살에 처박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미꾸라지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생존을 소똥같이 굴리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중국은 사드 한국 배치 방침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SLBM을 500㎞ 쏘는데 성공한 후 미국과 일전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겁을 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사드 배치를 규탄하고 있다. 이어서 촛불집회까지 열릴 예정이다. 두 손을 모으고 “우리 지역에 사드는 안 된다. 국가 생존은 나 몰라라”하면서 기도까지 하려 한다.

 지난해 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했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준전시상황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메르스가 어디까지 확산할지 모르는 처지에서 국익과 민생이 위협받는다며 ‘이 땅에 대통령은 있는가’라며 무능한 정부를 질타했다. 메르스가 온 나라를 다 잡아먹을 듯한 기세에서 정부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온갖 괴담이 춤을 췄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그때는 모든 게 용납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공격하면 수많은 인명이 쓰러진다. 주변국이 핵 무장하고 위협하는 게 현실이다. 생존은 휴대폰을 가지고 노닥거리는 일과 차원이 다르다.

 아, 생존의 가벼움이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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