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妓生廳(기생청)
妓生廳(기생청)
  • 송종복
  • 승인 2016.08.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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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조선 11대 중종 때 기생을 선발해 교육을 관장하는 관청이다. 기생청에는 의녀와 기녀들로 위인들과 접할 기회가 많다. 때로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애국적 여성들이다.

 조선 9대 성종 때는 공사(公私)의 연유(宴遊:잔치)에 의녀(醫女)와 기녀(妓女)들을 공공연히 참가시켰다. 그러나 11대 중종은 각종 연회나 가무음주로 회식할 때 의녀나 기생을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사헌부에 형벌을 제정하도록 명했고, 이를 위반한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지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대에 특히 의녀와 기생을 즐긴 분은 왕족으로 성종ㆍ수양대군ㆍ연산군ㆍ양녕대군ㆍ안평대군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생청은 11대 중종 때 설치한 관청으로 기생을 선발하고 교육시켰다. 서울과 평양에는 기생학교를 두고 15세에서 20세까지의 처녀를 입학시켜 가무(歌舞)ㆍ행의(行儀)ㆍ시(詩)ㆍ서화(書畵) 등을 가르쳐 그들이 접대하는 상류 사족(士族)의 교양과 걸맞게 연수시켰다. 이 중 안동기생은 송대학지도, 제주기생은 주마지기, 함흥기생은 송출사표, 관동기생은 창관동별곡, 의주기생은 치마무검, 평양기생은 창관산융마시, 북청기생은 치마지기, 영흥기생은 창용비어천가로 유명하다.

 그리고 의녀란 태종 6년(1406) 제생원(濟生院)에서 의료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출발된 것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병의 진단받기를 꺼려 의녀[여의사]를 따로 뽑아서 주로 의방서ㆍ진맥ㆍ명약(命藥)ㆍ침구ㆍ점혈(點血) 등 의료사업에 종사시켜 기생과 노비와 비슷하게 대우했다. <경국대전>을 보면 의녀와 의기도 평민에게 시집가면 종량법(從良法)에 따랐다. 그러나 <속대전>에는 남성의관들은 중류에 속했지만, 여성의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갑신정변 후 노비제도가 폐지되고 왕립병원이 설치되자 현대식 간호원이 요청되다가 요즘은 간호사로 승격돼 사회적 신분이 상승되고 있다.

 기생의 배출지로 이름난 곳은 서울ㆍ평양ㆍ성천ㆍ해주ㆍ강계ㆍ함흥ㆍ진주ㆍ전주ㆍ경주 등이다. 이 중 문장으로는 황진이ㆍ매창ㆍ소백주 등이며, 의기(義妓)로는 평양의 계월향, 진주의 논개, 가산의 홍련 등이다. 오죽하면 기생청을 두고 이들을 훈련시켰을까. 현재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못지않게 미인이 많다. 이런 미인들은 세계의 위인들과 접할 기회도 많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얼마든지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물질에 현혹돼 한말이나 일제 강점기에 비하면 허무한 감이 없지 않다. 앞으로 조국을 위해 초개같이 몸을 던질 위대한 미인은 언제쯤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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