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37 (금)
김해도예촌과 백파선
김해도예촌과 백파선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7.21 0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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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문화ㆍ체육부장
 김해 상동면 대감리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견됐다.

 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지난 6월 8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상동면 대감리 503번지 일원을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김해지역에서 최초로 고문헌 기록과 부합하는 고고학적 실증자료로서 조선시대 공납용 분청사기 생산지가 확인됐다. 이는 분청사기의 시종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된 김해 상동면 대감리와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칭송받는 백파선과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

 백파선( 百婆仙)은 임진왜란 당시 사가현 다케오지방의 번주인 이에노부에게 끌려간 조선사기장 김태도(일본명 : 심해종전, 深海宗塼)의 부인이다. 김태도와 백파선은 자손들에게 심해 후카우미(深海)란 성을 물려주게 된다. 심해는 “고향인 김해를 마음 깊이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심해는 김해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백파선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백파선이 사망한 지 50년째인 1705년에 증손자인 심해종선(深海宗善)에 의해 세워진 이 비석에서는 “증조모의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했으니, 백파선은 실명이 아닌 것이다. 효심 깊은 손자가 그 자취와 공덕을 기려 백파선이라 칭했는데 이름처럼 불리워졌다.

 이삼평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 아리타 자기 창업에 공헌한 또 한 명의 도공, MBC대하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모티브가 된 여성이 도공 백파선이다.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간 그는 아리타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도공들의 지도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지난 2월 그의 이름을 딴 ‘백파선갤러리’가 일본에서 개관했다. 폐가를 리모델링해 고(古)민가의 느낌을 살린,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었다. 여성 작가들의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백파(100명의 할머니) 육성 프로젝트’ 등 백파선의 정신을 기려 여성 작가 중심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매년 4월과 5월에 열리는 도자기축제 기간에는 한ㆍ일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아리타도자기 축제에서 만난 백파선 갤러리의 큐레이터 노진주 씨는 백파선 갤러리가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한ㆍ일 문화 교류의 거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백파선 갤러리에서는 축제 기간 내내 한복을 입고 김밥과 김치를 메뉴로 한 음식도 제공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며 아리타 요업의 어머니라 불렀고 지금도 아리타에서는 백파선을 기리는 제를 지낸다. 그의 후손들도 심해를 성으로 사용하며 백파선의 후손 중 실제로 도자기를 제작한 세대는 13대까지로 보인다. 이들은 아리타의 보은사 경내의 작은 바위산인 관음산에 올라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고 그 한을 도자기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백파선은 보은사 경내에 묻혀있다. 보은사의 주지스님은 매월 말 아침 독경시간에 백파선을 아리타의 수호신으로 도자기의 번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의 삶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적 도자기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또 한 곳, 김종전과 백파선 부부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 있다. 후쿠오카 하카다 역에서 전철을 타고 사가현 다케오 온천역에 내리면 일본에서도 유명한 도자기 도시를 만나게 된다. 옛 다케오 시내를 중심으로 다케오코카라쓰 도자기(武雄古唐津)의 가마가 많이 입지하고 있다.

 1천300년의 역사를 지닌 다케오온천 호텔 안내문에는 다케오 도자기 역사가 1597년 정유재란 때이니 조선반도로부터 건너온(붙잡혀 온) 심해종전 가족의 가마개업이 시작됐다. 그 후 400여 년 도자기업은 끊어지지 않았고 현재 90여 곳 가마가 있고, 다케오 도자기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소박하며 강한 도자기다. 또 사용할수록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날로 성장하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안내문에서 알리는 것처럼 다케오(武雄)시의 도자기는 임진왜란 때에 김해(심해)에서 잡혀 온 김종전 백파선 부부 일가가 전해 준 도자기의 전부다.

 백파선은 온화한 얼굴에 백발이 성성하며 귀가 늘어져 있으며 항상 큰소리로 웃었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덕을 지녀 96세까지 장수하며 조선의 사기장들을 이끌어 온 대모이자 지도자로 신선같은 성스러움을 간직한 김해의 인물이었다.

 김해에서 분청사기가마터의 발굴은 김해도예의 역사성이 확인된 것이다. 일본 도자기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 준 백파선의 흔적도 가시화되고 있다. 김해도예촌이 조성돼야 한다는 명분도 충분하다.

 백파선은 1560년 김해에서 태어나, 1656년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백파선이 여인의 몸으로 사기장이 되고, 현대 일본의 도자기 역사에서 이름을 남길 정도의 백자 제작 실력이 대단했음을 볼 때, 출신은 아마도 김해의 어느 도공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몸으로 익힌 것일 거란 추측이 타당해 보인다. 라는 등등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하루빨리 김해도예촌이 조성돼 일본 보은사 경내에 묻혀있는 백파선의 법탑(만료묘태도파의 탑)을 이곳 김해로 모셔오는 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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