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동 칼국수와 공자
동상동 칼국수와 공자
  • 김혜란
  • 승인 2016.06.2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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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상인과 공자 사이에 어떤 줄긋기를 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유태 상인, 중국 상인 다음으로 유명한 일본 오사카 상인들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오사카 상인들은 18세기에 상인을 위한, 상인에 의한, 상인의 학교를 지었다. ‘회덕당’(懷德堂)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학문을 통한 진리탐구에 힘썼다. 주자학, 즉 유학을 통해 세상을 경영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수용했다. 그들은 주자학의 고루한 세계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얻고 싶었고, 주자학의 비판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를 키우기 바랐다. 훗날 그 학교(회덕당)에서 배운 학생들 중에 당대를 대표하는 유능한 학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주자학 비판에서 시작된 새로운 학문 체계를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교육 목표는 형식보다 실제, 이론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었다.

 일본 상인의 바이블 중에 오사카 상인 출신이시다 바이간이 쓴 ‘석문심학’이 있다. ‘심학’은 ‘마음으로 반성해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일본인의 상도를 최초로 체계화한 사상인데, 오늘날 일본 국가 경제를 일으킨 바탕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노동은 자기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상인은 상대방과 자신을 모두 이롭게 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사치를 철저히 배격하고 근검절약해야 하고, 특히 상인은 반드시 ‘인의예지’를 갖춰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인(仁)은 타인, 즉 고객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며, 의(義)는 사람의 바른 마음, 예(禮)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 지(智)는 지혜를 상품으로 만드는 마음, 신(信)은 돈을 빌리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마음이다.

 ‘석문심학’은 마치 군자에게나 가르칠 법한 공자의 철학을 상인들이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눈앞의 이익보다는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이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이며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결론일 것이다. 상인의 존재(存在)의 의미와 이윤의 정당성, 근검절약과 정직을 공자의 철학을 통해 배우게 했다. 결국 상도를 깨닫고 실천해야 진짜 장사꾼이라는 뜻이리라. 그런 노력들이 ‘경영의 신’이라 칭송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만들고 아사히 맥주를 만들고 닌텐도와 닛신 식품을, 다카시마야 백화점을 만들었다. 일본은 어쩌면 상인과 공자와의 줄긋기를 넘치게 해냈다.

 김해 동상동 전통시장 안 새마을문고가 재개관을 했다. 관련 축하 행사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책 듣기’ 시간이 마련됐다. 전통시장 안의 새마을 문고라…. 평생교육센터와 주민센터, 작은 도서관 등 주민들을 위한 공공장소라면 널려 있는 것이 도서관류와 책인데, 새마을문고가 재개관을 한다니 약간 놀라웠다. 그것도 재래시장이라 불렀던 전통시장 안에 있는 문고다. 시장 상인들의 평균연령은 65세 전후였다. 행사는 10여 개 정도의 칼국수집이 줄을 지어 앉은 칼국수 타운에서 이뤄졌다. 행사장에 앉은 분들은 다수가 새마을운동본부, 바르게살기 운동본부, 부녀회, 번영회 등등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이었다. 땀으로 목욕하면서 소리 내서 책을 읽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행사를 끝내고 먹은 칼국수 한 그릇에서 답을 찾았다. 밀가루 반죽 만들고 국물 내느라 책 듣는 일은 안중에도 없을 것 같던 칼국수 집 할머니 사장님이 아는 척을 하셨다. 참 좋은 이야기고 멋진 음악이었다는데, 넉넉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따뜻한 표정, 수고를 치하하며 칼국수를 권하는 진심 어린 눈빛이 빛났다. 셰프나 요리사의 오버하는 접대용 멘트 따위가 아니라, 인생을 원숙하게 살아낸 삶의 고수가 빚은 음식이고 최고의 감상 소감이었다. 굵지도 가늘지도, 쫄깃하지도 물컹거리지도 않은 칼국수 면발과 부드럽게 입안을 휘감는 당면을 함께 느끼는 순간 칼국수 집 ‘인의예지’는 신뢰 잃지 않는 면발과 국물 맛, 적당한 미소와 사람들의 대화를 절대 넘치지 않게 지켜보는 할머니 사장님의 태도에 있음을 확인했다.

 상인과 공자철학과의 줄긋기는 이처럼 일본 오사카 상인들 것만은 아니다. 현장에서 수십 년 장사하면서 익힌 노하우, 즉 형식보다 실제, 이론을 넘어선 실천과 상도를 동상동 칼국수 집에서 확인했다면, 너무 배가 고팠던 탓일까. 후배상인들은 새마을 문고의 힘을 통해 할머니사장님을 닮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상도를 지키는 힘은 할머니 같은 상인들의 암묵지가 절반 이상이지만 말이다.

 장마철, 김해 동상동 전통시장 칼국수집 할머니 사장님을 자주 뵐 것 같다. 공자의 ‘인의예지’를 떠올리며 당면과 칼국수 면발을 넘기는 짜릿한 이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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