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지방자치
내 안의 지방자치
  • 김혜란
  • 승인 2016.05.25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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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지역에서 활동하는 명망가(?)들의 푸념을 자주 듣는다. 문학에서부터 음악, 연극, 혹은 기업체 강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속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푸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작곡가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고 갖가지 악기 공부와 성악공부를 하면서 작곡이 자신 적성에 맞는 것을 깨닫고 작곡의 길에 매진했다. 예술활동에 점수 매기기가 가능한지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어쨌든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괜찮은 수준에 이르렀다. 클래식 음악 작곡이 전공이었지만 대중음악에도 귀 기울이고, 그 뿌리인 인문학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역에서는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지역의 내로라하는 문학인들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많이 했다.

 그에게 작업을 제안했던 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것이 있었다. 지역이다 보니 예술노동에 맞는 대가를 제대로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꺼이 그 힘듦을 감수했다. ‘그래, 중앙이 아닌 지역의 사정은 열악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함께 일해 왔던 제안자가 어느 때인가 큰 규모의 제작비를 가지고 비슷한 작업을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자신이 하게 되리라 기뻐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간택된 자는 자신도 아니고 지역의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를 불러들였고 큰 제작비를 들여서 작품을 만들고 성대하게 발표회도 열었다. 서울 출신 작곡가가 그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다 알았다. 해 보면 아니까.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어머, 지방방송 아닌 줄 알았어요’ 이런 말을 하면서 진심 어린 선의의 눈빛을 반짝거린다. 칭찬인 것이다. 얼굴은 웃지만 기분은 씁쓸하다. 때때로 이런 말도 자주 들린다. ‘뭐? 그 멋진 일을 우리 지역 사람이 했다고? 말도 안 돼’ 신앙처럼 확신한다. 왜 말이 안 되는 걸까. 말이 되고도 남는데….

 주변에는 이런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심히 했던 주변 사람들을 형편이 나아지면 모른 척하고 무시한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함께 고생한 사람과 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실력과는 별로 무관한 이유를 갖다 대면서 중앙, 아니 서울의 그들을 찾는다. 서울과 중앙이 무조건 다 낫다고 말할 수 없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해묵은 논쟁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몇백 번 짚어야 할 일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지방자치를 외쳤고 정치와 행정은 형식적으로 ‘지방자치’를 획득했지만 다른 분야는 그냥 ‘중앙집권’하도록 스스로 자청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책임방기일 수 있다. 사람들이 서울에서 데려온 누군가는 무조건 인정받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이미 낡은 생각이지만 붙잡고 싶은 것은 아닐까. 되도록 결과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중앙출신이 최선이라고 판단 내린 주최 측의 책임회피수단일 뿐이다. ‘그래도 서울이야’ 절대 착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다. 내 주변을 믿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조차 끌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순환으로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자신 주변도 또 믿지 못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애를 써서 예산은 따왔을지 몰라도 그동안 노력했던 과정의 힘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출신에 기대서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긴가민가했던 믿음을 확실히 놓치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면 더 억울해할 사람들이 더 그런 짓을 한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미래를 위한 혁신의 문제다. 늘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세상은 기대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계속 되풀이되는 행동은 언젠가는 우리의 DNA에 각인 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태어나는 장소로 삶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일이 법(法)으로 정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니 기회는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방자치는 성숙해져 보인다. 그러나 ‘내 안의 지방자치’는 미지수다.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성숙해 보이는 겉모습 역시,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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