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와 향수, 견지망월 (見指忘月)
모자와 향수, 견지망월 (見指忘月)
  • 김혜란
  • 승인 2016.05.18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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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어느 가상공간의 도시가 있다. 이곳의 시인, 특히 중년 이상의 여성시인들은 다수가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 이상하다. 특별하고 싶은 걸까? 마음의 아름다움은 몰라도 외모의 아름다움 추구는 문학 한참 뒤로 밀릴 것 같은 그 여성시인들이 왜 그토록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일까. 그 무리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누군가가 용기 내 알아봤다. 그 도시의 여성시인들이 모자를 기이하도록 많이 쓰고 다니는 이유는 놀랍게도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였다. 탈모 때문에….

 탈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신경을 많이 쓰고 힘든 걱정을 자주 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알고 있다. 시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세상을 고민하고 끝없이 머리와 마음을 다해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게 창조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다른 여성보다 많을 터이고, 머리카락이 숭숭 빠져 나간다. 결국 그 흉(?)한 머리 모양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다닌 것이다. 챙 넓은 모자, 베레모자, 야구모자 등등 이런저런 모자를 쓰고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으리라.

 올봄, 젊은 시절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시작했다. 사실은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경멸하며 살았던 일이다. 일부러 강한 향이 나는 향수를 골라 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향수를 뿌리는 날이 있다. 어떤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까지 향수를 내 몸에 투척한다. 누구는 혹시 늦바람 난 것 아니냐고 의미 있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뭘 봐?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갱년기증세 때문이다.

 벌써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갱년기 증세다. 잊을만하면 온몸이 화끈거리다가 땀이 나고 또 식어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다른 계절은 참을 만하지만 여름만 되면 더 힘들다. 갑자기 화끈 달아올라서 땀이 줄줄 흐른다. 옆에서 어디 몸이 불편하시냐고 묻는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일하려면 냄새 나는 옷과 몸이 신경 쓰인다. 결국 그렇게 싫어하던 향수 뿌리기를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모자 쓰는 일이나 향수 뿌리는 일은 개인의 취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유난히 떼로 모자를 많이 쓰는 집단이나, 이전까지 그런 일이 없다가 갑자기 향수를 뿌리는 사람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편견을 작동시킨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범위 안에서다. 그러나 상식이란 것이 때로는 얼마나 사람을 왜곡되게 판단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워낙에 편견의 대상이 잘 되는 여성으로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주변에는 잘못된 상식과 오해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중학교에서 패싸움을 해서 패고 다친 아이들이 몇몇 있다고 하자. 싸운 저학년 아이들은 정학을 당했다. 그런데 그 저학년들을 뒤에서 이간질하고 부추겨서 결국 치고받고 싸우게 만든 멀쩡한 고학년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때는 싸운 저학년보다 뒤에서 싸움을 하게 만든 고학년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원인해결보다는 결과에 대한 상벌로 빨리 끝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만이 늘 판단의 대부분을 정한다.

 우리 사회도 똑같다. 최근 들어 늘어난 우울한 뉴스가 있다. 생활고 때문에 저지르는 범죄다. 또 너무도 잔인한 범죄가 수시로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장과 범죄자를 자극적(?)으로 편집한 TV 뉴스화면을 보고 욕설을 내뱉고 만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일을 하게 만든 원인보다는 그 일 자체에 대한 판단으로만 범죄자를 욕하고 경멸한다.

 사람을 해쳐도 그냥 한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괴로운 사정이, 혹은 배후에는 더 무서운 힘이 버티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말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견지망월(見指忘月) 이라 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더니 달은 못 보고 손가락만 보더라는 기막힌 이야기다. 결국, 작은 불행에도 그 뒤에는 아주 큰 원인이 있을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자.

 떼로 모자를 쓰고 다니고 향수를 샤워하듯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우스꽝스런 행동 뒤에는 절박하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루 오래 적용해서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꼭 남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신문을 놓고 화면을 바꾸는 순간, 잊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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