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모성(母性)을 위하여
철없는 모성(母性)을 위하여
  • 김금옥
  • 승인 2016.04.13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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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만개한 벚꽃 위로 햇살이 하도 좋아서 분성고등학교 옆 산책로를 잠시 걸었다. 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숲에는 새들이 지절대며 부산하게 놀고 있었다. 깃털의 끝은 검고 뒷부분에는 흰색 무늬가 새겨진 주황색 관을 높이 쓴 새! 후투티였다. 서둘러 카메라를 눌러댔지만,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서 애를 태우더니 날아 가 버렸다.

 지난 1월, 해외여행을 떠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그 집에 들러 십자매를 돌본 일이 있었다. 다섯 마리 새들은 조롱 두 개를 이어붙인 2층 집에 살면서 거대한 베란다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새들은 갑작스러운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듯 날개를 푸르르 떨어댔다. 필자는 조용조용 말을 건네며 새들을 진정시키고 널따란 그릇에 모이를 담아 주고 물그릇도 여러 개 놓아 주었다. 새들의 목욕을 위해 큰 대야에 물을 떠 놓으면서 작은 새들이 행여 빠져 죽을까 봐 물을 부었다 덜어내기를 반복했었다.

 새의 안부를 묻는 필자에게 지인은 어린 새가 알 하나를 낳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바깥이 궁금한 그 새는 알을 입구 쪽으로 끌고 나와서 품는데 몸의 절반은 늘 둥지 밖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을 품는 시간은 잠시,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 나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른 새들과 놀고 있다는 것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최소한의 먹이와 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둥지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던데, 당최 이 철없는 어미 새는 바깥이 궁금해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니 알이 부화되기는 틀린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철없는 어미 새 이야기를 들으니, 최근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녀를 돌보지 않고 끼니를 굶기고 유기하고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던 비정한 부모들! 그들은 죽을 줄 몰랐다고 했다.

 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요즘 부모들은, 영화나 게임을 통해 어떤 강한 충격이나 잔인한 위해를 당해도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 주인공들을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일까. 아니면 인간사회에서 모(부)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김다은 작가는 저서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에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인용해 모성본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양의 부르주아 여성들은 어린 아이들을 유모에 맡겨놓고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시골 아낙들도 아기를 천에 돌돌 말아서 온기가 남은 벽난로 옆 벽에 매달아 둔 바구니에 담아 두는 것이 보통이어서 아기가 살아남을 확률은 50% 정도였다고 한다. 정부는 인구조사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대받거나 매를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높은 유아 사망률은 군사적으로도 이익이 되지 못했고, 학대받고 자란 아이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를 잘 키워야 미래가 밝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정부는 여성들에게 모성본능을 교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부는 육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의학 분야의 다양한 처방들을 개발하고 보급했다. 이로써 어머니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적극적으로 모성본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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