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문화와 가족식탁
혼밥문화와 가족식탁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4.06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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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편집위원
 ‘2인 이상 주문 가능합니다.’

 혼자 식당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 같은 문구는 옛말이다. 1인 가구 증가와 ‘나 홀로’ 문화의 확산으로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다. 이런저런 식당을 기웃거리다 접근이 편한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식당들처럼 중국집에서는 ‘몇 분입니까?’하고 묻지 않았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짜장면 하나 주세요”하니 모든 것이 정리가 됐다. 혼자 밥 먹기 ‘혼밥’이다. 여기서 ‘혼밥’은 혼자 먹는 밥을 뜻하는 신조어다.

 식당에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온전히 혼자 밥을 해서 혼자 먹는 것은 말 그대로 고독한 식사다. 이상적인 식사는 골고루 함유된 식단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OECD 노인 자살률 1위, OECD 노인 빈곤율 1위. 그리고 독거어르신 10명 중 6명이 영양불균형 상태가 어르신들의 현주소다. 경제적 어려움이 주원인이다.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은 혼자 음식을 준비하면서 제대로 균형 잡힌 식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의 영양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전국의 혼자 사는 ‘65세 이상’ 1인 가구는 144만 2천544가구로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했다. 장수는 미덕이다. 하지만 병들고, 외롭고, 가난하고, 일상의 문제를 처리하기 힘든 4중고가 동반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홀몸노인의 수도 크게 증가하면서 실제 홀몸노인 4명 중 1명은 4중고(苦)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개인적 노후준비는 물론, 공적개입의 필요성이 항상 제기되고 있다. 홀몸노인의 증가와 함께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 청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2014년 통계청에서 발표된 1인 가구의 나이대별 분포를 살펴보면 20대가 17.0%, 30대가 17.9%를 차지한다.

 1인 가구 증가는 개인주의의 확산,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겨지는 인식변화 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장기적 경기침체로 인해 성별을 막론하고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워진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대한민국 1인 가구는 500만 가구에 이른다. 총가구가 1천871만 가구이기 때문에 전체가구 중 약 27%가 혼자 살고 있다. 전체 인구 5천62만과 비교해서는 10%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더 주목할 점은 1인 가구의 증가율이다. 2020년에는 1인 가구가 588만 가구로 2015년과 비교해 1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체 가구 수 증가율 6.3%, 인구증가율 1.6%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혼자 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음은 어찌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없어지고, 오히려 이러한 추세에 맞춘 ‘나홀로식사족’을 위한 식당을 방문할 가능성이 잦아졌다. 신촌의 한 식당은 주문 때부터 식당을 빠져나올 때까지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입구에서 선불로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기다린다. 자리에는 칸막이와 커튼이 쳐져 있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용 음수대와 옷걸이도 따로 있다.

 우리 나라 식사문화는 어디에서 식사를 하던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은 개인이 공동체와 어울리는 데 실패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

 어릴 때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했던 일상이 일마저도 밥을 함께 먹어야 되고 사업상의 협상도 식사를 통해서 사교와 친목의 의미로 봤던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 문화와 싱글족이 확산되면서 밥을 혼자 먹는 것이 전혀 낯설거나 흉이 아니게 됐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혼밥에 대한 반응도 처량하거나 싸늘하지 않다. MBC ‘나 혼자 산다’에는 일명 ‘혼밥 레벨’이 소개됐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라면을 먹는 단계(레벨1)부터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레벨9)까지 레벨을 올리는 일종의 놀이로 ‘혼밥’을 즐기는 모습은 신선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혼밥고수’가 되는 것이다. 출연진들이 고기 집을 찾아가 소주를 시키고 혼자 고기를 구워 먹고 있거나 혼자 레스토랑을 방문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행복은 누군가와 따뜻한 정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면 혼밥은 그런 세상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면 안 될까.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겨울에 팔지 못한 성냥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면서 창문 너머 따뜻한 불빛아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동화 속의 그림을 생각하면서.

 혼자만의 식사는 사색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식사를 할까. 가족식탁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찾기까지 굶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혼밥을 거절할 수도 없다. 주어진 혼밥이라면 즐겁게 먹는 혼밥문화를 공유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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