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해 본 솜씨네
많이 해 본 솜씨네
  • 김병기
  • 승인 2016.03.13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112종합상황실 경위
민원실서 겪었던 어느 할머니 추태

 그 날도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저녁에 교통사고 처리로 홍역을 치를것을 염려하고 있는데 할머니와 젊은 아낙이 들어섰다. 버스를 타고 오다 기사가 급제동을 해 넘어져 다쳤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그냥 간 뺑소니 신고였다. 다행히 할머니는 버스번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잠시 후 기사가 왔고, 두 사람이 처음엔 옥신각신하더니만 할머니가 알고 보니 아들 고등학교 친구로 별 다친 곳도 없고 하니 없던 일로 해 달라며 그냥 가겠다고 한다.

 이미 접수대장에 등재가 됐기 진술서를 작성 제출케 하자 할머니는 글을 잘 모른다 해 대필을 하게 됐고 버스 안의 안전사고로 내사종결을 하게 됐다. 5개월 후 어느 날 할머니가 찾아왔다. 이번에 제법 멋을 부린 차림이라 쉽게 눈에 띄어 반갑게 커피를 대접하자, 대뜸 신고를 했는데 왜 처리를 제대로 해 주지 않느냐 한다. 안전사고는 종결됐기 다른 사고가 있는지 묻자 딴청을 한다. 영문을 몰라 사고처리 과정을 누누이 설명했건만 잠시 후 경찰서장실을 찾아 할머니가 한 마디했다.

 “많이 해 본 솜씨더라. 뭔가 적어 놓고 도장을 달라 해 주었는데 그것이 합의서인 줄 어떻게 알았나, 할매가 글을 아나, 뭐 아나. 얼마나 기사한테 받아 먹었는지 분해서 못 살겠다”며 하소연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요즘이야 청문감사이지만 예전 감찰은 할머니 입장에서 하명을 한다. 경위서를 제출하라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느냐.

 젊은 아낙과 같이 왔음을 떠올려 할머니에게 연락처를 물으니 그 새댁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이 있는 울산으로 바로 갔고 누군지 모른다 했다.

 기록을 들추어 관할 파출소에 아낙의 행적을 부탁하자 아직도 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즉시 그 날의 기억을 부탁했다. 백일이 갓 지난 아이를 안고 경찰서에 온 아낙은 할머니가 워낙 유명해 증인을 안 서려고 하다가 아무도 나서지 않아 친정엄마 생각에 나선 것이라며 자초지종을 듣고는 실소를 한다. 할머니가 일본에서 중학교를 나와 한문까지 아는데 한글을 모른다 했다니 기가 찬다며. 울산에 간 적도 없고, 동네에서도 하찮은 일로 트집을 일삼아 아무도 상종을 하지 않는다 한다.

 오늘같이 비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그 할머니 아직도 정정하게 또 누군가에게 많이 해 본 솜씨네 하지는 않을까. 늦은 밤인데도 공중전화를 빌려 도박신고가 들어온다. 같이 놀다 돈을 잃은 분일까, 아님 독수리 오형제일까. 도박신고 특성상 10건 중 1건 단속이 어렵다. 그래도 눈 부릅뜨고 밤을 벗 삼은 동료들이 싫다 좋다 말없이 출동해 든든하다. ‘긴급신고 112 ㆍ 민원신고 182’ 알고 나면 참 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