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塗貌紙(도모지)
塗貌紙(도모지)
  • 송종복
  • 승인 2016.02.03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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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塗:도 - 바르다 貌:모 - 얼굴 紙:지 - 종이

 도모지(塗貌紙)는 조선 시대에 주로 가문에서 행해졌던 사형(私刑)이다. 집안의 윤리를 어긴 자녀를 죽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행해졌는데, 이를 천주교 박해에도 사용됐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가문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식을 부모가 눈물을 머금고 남몰래 죽이는 사형(私刑)을 ‘도모지’라고 했다. 이때 처형을 당하는 자를 기둥에 묶어놓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는 얼굴에 물 묻힌 딱 종이[韓紙]를 밀착해 여러 겹으로 쌓아 죽였다.

 여러 장의 한지를 얼굴에 겹겹이 씌워서 물을 뭍이면 숨이 막혀 죽는데, 이때 품는 물은 주로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입자가 미세해 한지의 구멍을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지가 말라 조금 숨을 쉬면, 다시 물로 품어 숨이 막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 번에 목숨을 끊지 않고 서서히 죽이는 방법이다. 참으로 냉혹하고 잔인한 형벌이다. 이런 행위는 아주 잔인하지만 간편하고 남몰래 소리 없이 죽이는 데는 최선의 방법이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에 천주교 신앙은 가문(家門)의 재앙이었기에, 각 가문에서는 천주교를 믿는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도모지(塗貌紙)’라는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빈발했다.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천주교 믿는 가족을 집 기둥에 묶어두고, 얼굴[貌]에 종이[紙]를 바른[途]다. 몇 겹으로 바른 종이가 천천히 마르면 보지도 못하고, 숨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질식하고 만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된 오치문은 울산 장대로 압송된 뒤 도모지형으로 죽였고, 1866년 병인사옥 때 대원군이 천주교 금압령(禁壓令)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 신자를 많이 학살시켰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잡혀 처형당하는데, 이때 廣州(광주) 유수가 이들을 ‘도모지형’으로 처형했다.

 ‘도모지’는 원래 가문의 윤리를 어긴 자를 죽이기 위해 사적(私的)으로 행하여 죽이는 방법인데, 이런 방법을 천주교 박해 때 많이 이용했다. 이러한 악습의 전통을 군사독재 시절 비슷한 방법으로 젖은 수건과 고춧가루, 그리고 주전자에 물을 부어 숨을 못 쉬도록 흘러내리게 하는 도모지가 변형돼 고문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의 어원을 원용해 뭔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에 ‘도모지’ 대신에 ‘도무지’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도무지’가 또 변형돼 ‘절벽지’란 용어로 많이 쓰고 있다. 즉 3포절벽(①연애절벽, ②결혼절벽, ③출산절벽), 5포절벽(④사교절벽, ⑤취업절벽), 7포절벽(⑥주택구입절벽, ⑦희망절벽)이란 유행어가 등장한다. 시대가 각박해 ‘도모지’가 ‘도무지’로, 다시 ‘절벽지’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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