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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한평생 어떻게 살았을까
왕은 한평생 어떻게 살았을까
  • 송종복
  • 승인 2015.12.21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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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왕이 되려면 대궐의 중심인 정전에서 옥새를 받고 용상에 앉으면 왕이 된다. 용상에 정좌하는 순간 대신들은 천세(千歲)를 외친다. 그 이유는 중국은 황제응 만세(萬歲)를, 그 외는 제후국으로 천세로 한다. 왕이 즉위하면 중국에 보고해 승인을 받는다. 이때 중국황제로부터 전왕(前王)의 시호와 함께 신왕(新王)을 임명하는 고명장 및 곤룡포 등을 받아온다.

 왕은 새해가 되면 천자가 있는 북쪽(중국)을 향해 절을 올린다. 이어 종묘의 조상신과 성균관의 공자(孔子)에 인사하러 행차한다. 그 후 종친들과 신료들을 만난다. 아울러 농업에 힘쓸 것을 당부한다. 왕이 한 번 행차하는 데는 호위병과 수행 관료를 포함해 5,000명 안팎의 인원이 동원된다.

 왕의 여가생활은 주로 매사냥, 독서, 저술, 투호, 격구를 즐긴다. 왕의 가족식사는 각각 따로 먹는다. 즉, 대비와 왕은 자신의 처소에서, 왕비는 중전에서, 세자는 동궁에서 각각 식사한다. 이유는 절대 권력자로 유지하기 위해 비빈과 자식들은 거의 미미한 존재로서 살아간다. 자식들의 호칭은 대군과 군, 공주와 옹주로, 비빈들은 왕비ㆍ빈ㆍ귀인ㆍ소의ㆍ숙의 등 서열화로 매겨 부른다.

 부부생활은 형식적이다. 왕이 성년이 되면 후궁이 많다. 태종은 자녀를 29명, 성종은 28명을 두었다. 반면에 단종, 인종, 경종, 순종은 1명의 자식도 두지 못했다. 태조. 정종. 태종, 단종, 고종은 다섯 명의 상왕이 있었다. 태종 때는 태조와 정종을 상왕으로, 세종 때는 정종과 태종이 상왕으로 있었다. 심지어는 왕이 세 명 있을 때도 있었다. 이런 때는 태상왕, 상왕, 주상[現王]으로 구별했다.

 왕의 임종이 다가오면 특별경계령이 내린다. 세자는 왕을 모시고, 자녀들은 모두 입궐한다. 왕은 여인의 손에서는 최후를 맞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후궁이 유언을 날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종 시에는 세자와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언을 듣는다. 이때 임종의 확인을 위해 코에다 솜을 대고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운명으로 판단한다. 사망이 발표되면 내시(內侍)는 생전에 입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복’을 3번 외친다. 이는 초혼의식이다. 한편 조선8도는 울음과 슬픔 속에 빠져들게 된다.

 왕의 서거 후에는 빈소와 호위를 맡는 빈전도감, 장례업무를 맡는 국장도감, 왕릉축조를 맡는 산릉도감을 설치한다. 그리고 사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을 평가해 시호와 묘호 그리고 능호를 정한다. 시호(諡號)는 대신들이 3가지를 정해 중국에 보내면 중국황제가 그 중 하나를 결정해 준다. 묘호(廟號)는 신료들이 시호와 함께 왕의 일생을 평가해 정한다. 능호(陵號)는 왕의 무덤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세종의 능호는 영릉(英陵)이다.

 조선시대 왕은 27명인데 왕비는 43명이다. 이 때 왕비란 정비와 계비에 대한 통계이다, 이 외 후궁의 통계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요즘은 어떤가. 조선시대 왕의 격인 대통령은 그동안 철저한 1부1처제이다.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의 3명이 있었다. 이번은 천 여 년 만에 독신여자 대통령 출현이다. 그동안 세습적인 왕권시대에는 인척(姻戚)이 정권을 전횡한데 반해, 선출직인 대통령시대는 친척(親戚)이 정권을 전횡한 예가 많다. 현 대통령은 친척은 있으나 인척이 없다. 따라서 과거 대통령과 달리 정권의 전횡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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