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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버티기 힘든 세상
죽어서도 버티기 힘든 세상
  • 김혜란
  • 승인 2015.10.01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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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삶과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이어질까. 올 추석은 유난히 죽은 후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묘지는 왜 쓰며 제사나 차례는 왜 지낼까. 유교전통으로 보자면, 죽은 후의 삶도 이어진다. 죽은 후에는 혼백이 분리되는데 몸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한동안 자신이 살아있던 곳 어느 하늘쯤에 머문다. 그래서 쉴 곳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올려서 드시게 한다.

 시부모님을 공원묘지에 모신 지 30년이 다 돼간다. 1년에 두 번, 설 추석으로 뵈러 가고 심란할 때면 이따금 찾아뵙기도 한다. 위치도 좋고 지세도 좋다. 영구임대지만 우리로 치면 평수 넓은 고급빌라 같다. 단독으로 두 분이 계시니 생전처럼 말다툼할 때도 남 눈치 안 봐도 되니 좋을 것이고, 앞으로 확 트인 전경이 무엇보다 웬만한 아파트 ‘뷰’ 보다 훌륭하니 가서 뵐 때마다 부럽기까지 했다.

 전세금은 들어가기 전에 냈다. 관리비가 문제다. 얼마는 선지급했는데 15년 만에 연락이 처음 와서는 관리비가 밀렸으니 내라고 했다. 그것이 2년 전이다. 부랴부랴 밀린 관리비를 마련해서 냈다. 부모님들께 죄송스러워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관리비 5년 치를 선납하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다가 뭔가 미심쩍어서 직원에게 물었다. “5년 치를 선납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까?”, “예… 일 년에 두 번밖에 안 오시는데 내년에 또 내려면 힘들 테니…”,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힘드시면 일 년 치만 내셔도 됩니다. 팻말은 꽂아놓겠습니다만…”

 평생 돌아가지 않아 애먹던 ‘수학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관리비 5년 치 선납을 공원묘지에 묻힌 사람들의 절반만 낸다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 돈을 미리 받고 그들은 어떤 서비스를 해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그들 말마따나 일 년에 두 번 정도 올 뿐인데 말이다. 관리비 5년 치 미리 낸다고 관리비 깎아 주는 것도 아니고, 묘지를 ‘스페셜’하게 관리를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손들이 돈 내는 것을 귀찮아 할까 봐,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내라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원묘지 측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전국 곳곳에 무연고 묘지가 30%에 육박하고 관리비 체납 묘지가 늘고 있어서 운영이 힘들다는 것이다. 장사법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관리비를 미리 달라는 것이다. 일단 2015년분까지만 내겠다고 했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종교의식은 다름 아닌 주검의 매장의식이라고 한다. 시신을 처리하고 쉬게 하는 묘지의 기능이 인류가 기록했던 가장 오래된 행위일 수 있다. 초기 이집트의 묘지는 단지 구덩이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지의 중요성이 커져갔다. 결국 무덤은 죽은 자의 집이고 영원히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집트인들은 살아생전 집보다 죽은 후 집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묘지가 왜 집 근처 교회에 있다가 공원묘지나 교외로 빠졌을까.

 죽은 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산 자들의 주거환경이 너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으로 보자면 자신을 있게 해준 조상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마음, 애정을 전하기 위해서 묘지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납골당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는데 죽은 사람을 위한 배려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맞고도 틀린 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잊고 산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조상 모시는 일에 계산기 두드리는 일이 외람 되다고 여긴다면 조상님들은 더 답답해 할 지도 모른다. 비록 당신들은 땅속에 누워있지만 계산 없이 살아서는 자식들 건사 못한다며 걱정하실 것이다. “나는 괜찮다, 괜찮아…”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조상을 아프리카 부족들처럼 집에다가 모셔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딴 곳에 모셔놓고 관리에 골머리를 앓느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집안에 두고 함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부족들, 문지방에 올려진 유골들, 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정말 마음속에 모셔 두던가.

 산 자만큼 죽은 자도 버티기 힘든 세상인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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