板門店(판문점)
板門店(판문점)
  • 송종복
  • 승인 2015.08.2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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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板:판 - 널판지 門:문 - 출입문 店:점 - 가게

 6ㆍ25 한국전쟁 때 휴전회담장소를 ‘널문마을’ 도로변 초가집에서 했다. 이 마을을 한자로 ‘판문점’이라 했고, 남측은 통일각을 북측은 판문각을 세웠다.

 민족분단의 상징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옛 이름은 널문다리)인데, 이 ‘널문리’를 한자표현으로 판문점이라 한다. ‘고려사’와 ‘조선실록’에는 이 지역이 개성부 판문평(板門平)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 마을에 널빤지로 만든 대문(널문)이 많았기 때문에 ‘널문리’라 했다. 또 이 부근에 널문다리(板門橋)가 있었기 때문에 판문점이라 한다.

 이곳은 6ㆍ25전쟁 때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개성군면지’에 의하면 판문교는 개성 쪽에서 널문리를 지난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돼 있다. 6ㆍ25전쟁 직전 널문리는 경기도 서북쪽의 장단군 진서면 선적리와 개풍군 봉동면 침송리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6ㆍ25전쟁 휴전협상이 1951년 7월 8일 개성 북쪽에 위치한 내봉장(來鳳莊)에서 개최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군이 무력시위를 벌이었다. 이에 1951년 9월 6일 회담장소 이전을 제의하자 북한 측은 널문리 주막마을을 제의해 개성에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곳이 널문(板門)이라는 장소인데, 여기에서 천막을 치고 휴전회담을 했다. 두 번째 회담은 ‘평화의 전당’에서, 세 번째 회담은 ‘판문점’이었다. 지금은 남측에 ‘통일각’(1965)을 북측에 ‘판문각’(1968)을 세웠다. 현 위치는 서울에서 50㎞, 개성에서 8㎞이며, 종횡으로 800m인 타원형 구역이며, 한복판에 휴전선이 통과한다.

 이곳에는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본부가 설치돼 있다. 스웨덴ㆍ스위스ㆍ체코슬로바키아ㆍ폴란드 등 4개국의 감시위원이 상주하고 있다. 또한 비서장회의, 언어장교회의, 일직장교회의, 경비장교회의 등 적대쌍방간의 각종 회의가 열리고 있다. 지금은 쌍방간의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로, 남ㆍ북간의 통신가설로, 남북내왕의 통과지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엊그제 대북방송을 송출하자 남ㆍ북 간에 포격이 오고 갔다. 이로 인해 지난 22일에 판문점에서 최고위급회담이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장장 10시간이나 회담했다. 이 지역은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지정돼 남ㆍ북한의 행정권은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세계적인 명소가 된 동족간의 분쟁지역으로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다. 누구나 이 지역을 답사해 분담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의 염원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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