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4:02 (금)
‘파피용’의 떼죽음
‘파피용’의 떼죽음
  • 박춘국
  • 승인 2015.08.20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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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논설위원
 고향이 거제도인 필자는 몇 해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 감성돔 낚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감성돔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자연산, 다음은 양식, 마지막으로 탈출산이 있다고 했다. 탈출산 감성돔은 일명 파피용으로도 불리는데 태풍으로 가두리 양식장이 파손되면서 탈출한 놈들을 일컫는다고 했다. 가두리 양식장을 탈출한 ‘파피용’들도 있지만, 적조가 심하게 퍼지면 가두리에서 방류하는 경우도 있다는 귀띔이다. 친구는 파피용들이 가두리를 나온 뒤 자연에 적응하면서 점점 자연산을 닮아 간다는 설명도 부연해 주었다.

 최근 경남 해안에 적조가 퍼지면서 양식어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적조(red tide, 赤潮)는 플랑크톤이 이상 증식하면서 바다나 강 등의 색이 바뀌는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물이 붉게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붉은 물이라는 의미에서 적조(赤潮)라고 하지만 실제로 바뀌는 색은 원인이 되는 플랑크톤의 색깔에 따라서 다르다. 주황색이나 적갈색, 갈색 등이 되기도 하며 이는 적조를 일으키는 생물이 엽록소 이외에도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류의 붉은색, 갈색 색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조를 일으키는 플랑크톤은 규조류(珪藻: diatom), 편모조류(鞭毛藻: dinoflagellate) 같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가장 일반적이며 한국에서의 적조 기준도 이 두 가지 플랑크톤의 양을 이용한다. 이외에도 남조류(藍藻: cyanobacteria)나 원생생물인 야광충(noctiluca), 섬모충(mesodinium)에 의해서 적조가 일어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적조의 원인을 물의 부영양화, 즉 물에 유기양분이 너무 많은 경우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비누나 세제에 포함된 인 성분이 문제가 됐으나 최근에는 영양물질이 공급돼 일어나는 원인 이외에도 연안 개발로 인한 갯벌의 감소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은 물속에 있는 미생물이나 플랑크톤을 먹이로 함으로써 미생물의 수를 어느 정도 유지해 주는 자연정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간척사업 같은 활동으로 갯벌이 줄어들면서 부영양화가 심해져 적조가 더욱 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외에도 기온의 변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해 미생물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하는 경우나 바람이 적게 불어 바닷물이 잘 섞이지 않는 경우에도 적조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엘니뇨 같은 지구 환경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적조가 더욱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조가 일어나면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 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물속의 산소를 이용해서 호흡하는 어패류가 질식해 폐사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물고기의 아가미에 플랑크톤이 끼여 물리적으로 질식하는 경우도 있으며, 적조를 일으키는 플랑크톤 중 독성을 가진 조류(藻類)가 있어 이 독성 때문에 폐사하기도 한다. 적조가 일어나면 어업, 특히 양식어업에 큰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독성물질이 축적된 어패류를 사람이 섭취함으로써 중독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적조가 일어나면 황산구리가 많이 포함된 황토를 살포해 대처하기도 하지만 별달리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적조가 심해져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들이 폐사를 피할 길이 없을 때 방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방류된 양식어류를 파피용으로 본다면 이 물고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수다. 죄명은 굳이 붙이자면 부모를 잘못 만난 것 쯤으로 봐야겠다. 인간이 먹이를 만들기 위해 인공부화를 거쳐 죄수를 만든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와 돼지콜레라, 구제역 등을 인간이 만든 가축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육상에서는 집단사육의 저주로 표현되는 가축병들이 죄 없는 짐승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고, 바다에서는 적조가 부모를 잘못 만난 어류들을 집단 폐사시키는 불행하고 슬픈 일이 확산하고 있다.

 적조가 가두리 양식장을 향해 죽음의 띠로 다가올 때 어민들은 불쌍한 물고기들을 살리기 위해 방류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어민들은 잔인하다. 긴급방류를 할 경우 복구비를 치어값으로 받기 때문에 차라리 성어를 죽여서 보상받는 편이 경제적으로 득이 된다는 계산을 한다. 인간의 계산기가 파피용들을 때 죽음으로 내몰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 적조로 죽어가는 물고기들의 원망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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